/ 경기본사 정경부장
“화장실이 넘칠 때 당신은 누구를 부릅니까? 이 오래된 정치적 금언은 대다수 사람들에게 어떤 수준의 정부가 필요한지를 묻는 것이다. 당신은 신체적 안전을 누구에게 의지하는가? 건강은? 주거기준은? 여가 시설은? 문화적 즐거움은? 대답은 보통 시나 군의회를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지방정부가 된다.”
뉴 인터내셔날리스트의 공동 편집자인 리처드 스위프트의 말이다. 사람들의 일상에서 중요한 문제는 대부분 지방수준의 해법을 필요로 하며 결국 ‘모든 민주주의는 지방의 문제’라는 인식이다. 저자는 비록 여러 현실적 사례를 들어 ‘지방 수준의 민주주의’를 회의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제야말로 민주주의의 근간을 지방수준에서 다시 생각해 보고, 도전을 시작해야 한다.
2003년의 ‘부안’을 기억하는가? 그해 부안은 핵 폐기장 건설을 둘러싸고 뜨거웠다. 수백년 평화롭던 작은 시골마을은 삽시간 핵문제를 전 사회문제로 확대했다. 전국을 뜨겁게 달궜던 반핵 싸움은 7개월뒤 주민투표로 막을 내렸지만 공동체에 상처와 영예를 동시에 안겨줬다. 동기간에 비수를 꽂은 상처로 시름 깊었지만 보기드문 주민운동의 승리를 기록했다. 부안은 당시 지방정부와 의회가 주민들의 의사에 반하는 결정을 밀어붙일 때 발생할 수 있는 ‘시민 저항권의 실체’를 생생하게 보여줬다. 지방정부가 주민의사에 충분히 귀 기울였다면, 지방의회가 좀더 기민하고 유능하게 대처했더라면, 그리하여 민주주의를 위해 만든 자치기구들이 제대로 작동했더라면 부안의 상처는 맛보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공직선거법과 지방자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뒷말이 무성하다. 기초의회는 마치 벌집 쑤신 듯 연일 반대 결의를 모으고 있다. 이참에 아예 정당 공천 자체를 없애려던 전국 시장·군수회의는 그야말로 엄포가 이만저만 아니다.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정당공천제다.
하지만 이렇게 한번 물어보자. 지방자치 10년 동안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폐단들이 노출됐는가. 단체장들의 독직사건은 얼마나 많았고, 지방의원들의 자질시비는 또 얼마나 많았는가. 그래서 이러저런 폐단들 때문에 지방자치를 그만두자면?
실제로 이런 논의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몇 해 전 국회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을 임명제로 환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지방자치법 개정안이 제출직전 단계까지 갔다. 당시 법안제출을 주도했던 사람들이 주로 지방의회 출신 의원들이었다. 결국 여론에 떠밀려 사멸됐지만, 지방자치제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과 반대가 만만치 않은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정당공천제는? 
먼저 정당공천제로 인한 폐단들 때문에 민주주의를 포기해도 되는지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지방정부의 책임성을 강화하고 후보자의 변별력을 높이고 지방의회의 전문성을 높이고 등등의 장점들은 차치하고라도, 정작 문제가 되고 있는 정당의 민주화는? 결국 이것도 지방이 함께 지고갈 몫이다. 시장·군수회의나 지방의회의 고민과 충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정당공천제가 지방정치를 중앙정치에 예속시킬 우려가 있다는 염려는 상당히 근거 있는 주장이다. 우리 정당체제 하에서 공천권이 바로 돈 문제로 연결되고, 지방선거가 또 중앙당 싸움으로 전락할 우려는 항상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결국 이 문제는 잘못된 정당문화를 바로 잡아야지 정당정치를 거부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정당공천제는 다원적 민주주의가 요구되는 현 시점에서 거부하기보다는 오히려 확대하고 참여해서 바로잡아 가야 한다.
모처럼 중선구제와 비례대표제, 유급제의 채택으로 역량 있는 인사들이 지방의회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넓어졌다. 이런 기대는 벌써부터 지방의회에 대한 기대치를 높여가고 있다. 잘못 관행화된 공천구조를 바로잡을 묘안에 지혜를 모으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