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취향이지만 나는 모든 분야에 그저그런 수준을 싫어한다. 일테면 대학에서 ‘전 과목 C’ 쯤 받는 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두 딸들에게도 그렇게 말한다. 모든 과목에서 60점 정도 받아도 좋으니, 한 두 과목만큼은 재미를 붙여 볼 것을 권고한다. 물론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른바 요즘 유행하는 말로 ‘선택과 집중’의 처세법이다. 두드러진 한 두 가지 재능만 있으면, 제 한 몸 먹고 사는 데 문제없어 보일 것 같아서다.
다소 뜬금없는 얘기를 꺼낸 것은 같은 얘기를 현 정부에게도 해주고 싶어서다. 개인과 나라가 어찌 견줄 대상이 되겠냐만 상황이 여간 딱한 게 아니기에 하는 말이다.
그 딱한 상황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시피 ‘민심의 고른 이반’이다.
노무현정부는 보수든 개혁이든 그 어느 쪽으로부터도 갈채를 받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뀐 개혁세력의 비판과 질타가 더 거세다.
환경단체들은 ‘최악의 반환경 정권’이라 규정하고, 노총은 ‘정권퇴진운동’을 입에 올린다. 농민단체들은 ‘사상 최초의 농민 파업’을 기도했으며, 장애인단체들도 정부를 향해 ‘저주’ 수준의 비난을 퍼부었다.
그 뿐인가. 수많은 시민단체들과 양심적 지식인들은 부시, 블레어와 함께 노무현대통령을 비슷한 수준의 ‘전범 반열’에 올려놓는데 주저함이 없다.
지역은 지역대로 눈 앞의 파이의 크기를 둘러싸고 반목과 쟁투를 벌이고 있다. 물론 그 불똥의 최종 낙하지점은 언제나 청와대다.
대통령과 정부로서는 억울한 측면이 있겠지만, 설득과 해명으로 상황을 벗어나기에는 이미 늦었다. ‘수구 꼴통 언론과 야당 탓’ 운운하는 것도 이미 식상한 레퍼터리요, 약발 떨어진지 오래다.
책임은 권한에 비례하는 것. 상황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에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개혁을 말하면서 보수층은 일찌감치 등을 돌렸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 2년 반 동안 철저히 신자유주의적 시장논리에 기댄 정책으로 일관하면서 개혁세력과도 등을 졌다.
잇단 개발정책과 개방통상정책, 한미동맹 강화와 노동시장 유연화, 기간산업에 대한 공공성의 해체 등은 결국 빈부격차와 사회·정치적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
거기에 현 정부의 취약한 관리능력까지 보태져 혼란은 도를 넘어선 양산이다.
돌아보면 거의 모든 정책은 상호 모순적이다.
한미공조의 강화와 한반도 평화 정착은 서로 충돌한다. 경제성장 정책은 사회적 분배와 맞부딪힌다. 경제개방이 공공성 강화와 크게 엇갈린다.
이처럼 모순되는 정책들은 언제나 있어 왔다. 상시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들이며 현실에서 늘 파열음을 내며 부닥친다.
오늘날 상황이 유독 어지러운 것은 현 정부의 우왕좌왕 때문일 것이라는 심증을 씼어내기 어렵다. 머릿 속에는 개혁마인드를 담고 있되, 몸집은 그걸 따라주지 못하는 모습이다.
아울러 취약한 입지에도 불구하고 모든 정책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아내고 싶어하는 소박한 소망(?)이 결국 현실에서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한 채 ‘전 과목 낙제’라는 형편없는 성적표로 이어진 것 아닌가 생각한다.
임기 5년의 절반에 이른 노무현정부는 이제 오른 산을 내려올 시점에 와있다. 그 기간에 국민 모두로부터 고르게 지지받고, 모든 정책을 다 잘 해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노무현정부는 이제라도 분명한 선택과 결단을 내려야 한다. 비록 어느 한 쪽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을지언정 그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그래서는 결국 아무것도 이룰 것이 없다.
모든 것을 다 잘해내겠다는 강박관념도 벗어나는 것이 좋겠다. 지난 기간 제대로 해내지 못한 것을 남은 기간 잘 해낼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결국 허다한 국정 과제 가운데 제대로 해낼 수 있는 몇 가지만이라도 제대로 챙기는 것이 상책이라고 본다. 굳이 거창한 거대담론에 매달릴 일도 아니다. 최소한 전기세를 못내 어린이가 촛불에 타죽는 일 따위가 더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등 사회안전망 관련 정책만이라도 제대로 내놨으면 싶다. 가난한 이들이 너무 힘든 세상이기 때문이다. /송경호기자 (블로그)keis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