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P상사는 인천에서 알아주는 내실이 튼튼한 회사로 자금력 동원으로 유명한 알짜배기로 소문난 회사다.
 그 회사 사주인 김 사장과는 법인인 회사명을 지어준 게 계기가 되어 알게 되었다. 지금도 가끔씩 직원을 채용할 때면 자문을 구해 참고하곤 하는데, 어쨌든 그는 철학이 있는 사업가로 나름대로의 뜻을 소신껏 펼쳐나가고 있었다.
 이윤의 10%는 회사직원들 후생복지로, 또 10%는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는 불우이웃을 돕는 데, 또 10%는 사업이 부진할 때를 대비해 저축해 두는 경영철학의 마인드가 철저했다.
김 사장이 이렇듯 확고한 소신을 가지고 사업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부인의 내조가 가장 컸었음을 모두가 인정하고 있다.
 그는 가난한 농가의 여덟 남매의 맏이로 태어나 고향에서 어렵게 중학교를 마치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해 갖은 고생으로 소년 시절을 보냈다. 공사판의 막노동부터 목욕탕 때밀이, 연탄배달, 우유배달, 쌀가게 점원 등등 닥치는 대로 일과 함께 나이를 먹어갔다.
 그의 유일한 즐거움은 고향에 있는 동생들 학비를 보내주는 걸로 청춘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토록 고생하는 가운데 틈틈이 고입검정고시를 준비해 어렵게 합격을 하면서 그런 과정에서 지금의 부인을 만나 대입검정고시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근면과 성실을 신조로 두 부부는 열심히 살아갔다. 어느 한쪽이 지치고 자포자기하려면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며 힘차게 격려하여 나갔다.
 이런 끊임없는 성실성에 하늘도 감동했는지 부인이 남편 몰래 틈틈이 저축한 돈으로 시골근교에 전답을 사두었던 것이 아파트부지로 선정되면서 엄청난 부를 만들어 주었다. 그것을 계기로 차근차근 부(富)를 넓혀 나가다 보니 이제는 어엿한 사업가로 많은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재산 목록 1호는 부인이라며 극구 자랑을 하였다. 오늘날 자신이 있기까지 부인의 내조가 아니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였으며, P상사의 일등공신은 부인이라고 공을 돌렸다. 그 말은 정말이지 필자가 보기에도 맞는 소리였다. 썩 좋은 팔자가 아닌 김 사장의 사주만 보아도 충분히 공감이 가는 얘기로, 이렇듯 부인 잘 만나 성공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 처덕이 있는 사주로 그 또한 하늘의 뜻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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