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부모 가정과 호주제 / 손미경 정치부장 
얼마 전 이웃의 한 어머니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자신의 아들네 학교 전체 입학생 180명중 10%가 넘는 20명의 아동들이 보호자와 성(姓)이 다르다는 것이다. 아이 성과 보호자 성이 다른 이유로는 어머니가 양육하던가, 혹은 재혼한 결합 가정인 경우를 들 수 있다. 그러나 보호자 성명을 통해서는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 혼자 양육하는 경우를 포함하면 한부모 가정의 비율은 대체로 이와 비슷할 것이란 짐작이 가능하다. 그동안 언론을 통해 소개되어 온 이혼율 증가가 이미 우리 사회의 제한된 범위를 넘어서고 있다는 사실을, 이같이 초등학교 입학생들의 보호자 성으로부터 확인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어릴 적 기억으로는 60여명에 달하는 초등학교 같은 반 친구들 가운데 편모나 편부의 경우는 많아야 한 둘에 지나지 않아, 소풍 행사시의 도시락 지참이나 부모님 학교 방문 행사시에 담임선생님께서 별도로 배려하셨던 생각이 난다. 또한 친구들도 가급적 말을 아껴 어울리려고 애썼던 기억도 있다. 이혼 등의 이유로 한부모 가정이 사회의 보편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어, 아이들 사이에도 과거와 같은 특별한 감정이 사라지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학교내 실상은 이러한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는 아직도 아득한 수준임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경제 성장과 더불어 사회적 조건이 열악한 남에 대한 인식도 함께 높아졌더라면, 한부모 가정 아동의 성(姓) 문제가 정체상태를 벗어나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호주제 폐지가 국회를 통과하여 공식 발효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설마 하며 침묵을 지키던 대다수 국민들 사이에 찬반 격론이 본격화되고 있다. 앞으로 사회의 윤리적 이슈가 부상할 때마다 호주제 폐지는 그 논쟁의 준거로서 인용될 것이고, 앞장서 논의를 이끌었던 이들은 두고두고 변호의 책임을 내려놓지 못할 전망이다. 그러나 정작 많은 아동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달리 공방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전통적인 윤리 기준에서 일탈된 사회적 약자를 애써 외면하려는 비겁한 소이가 아닐는지 모르겠다.
남성 중심의 호주제를 지지하는 측은 새로운 호주제로 인해 사회의 윤리망은 이제 완전 해체의 길로 들어섰다고 분개하고 있다. 과연 성씨 제도를 근간으로 한 호주제는 지난 천년 간 윤리적 방패막이를 해 왔을까. 신라 시대의 골품정치를 대체하고 이성(異姓)귀족들에 의해 사회, 정치질서가 재편된 고려시대에 들어서 비로서 자신의 출신지를 본관으로 하는 문벌(門閥) 가문이 등장하였다. 가문의 전통을 유지하고 높이기 위해 혼인정치가 횡행하였음은 물론이다. 고려 시대를 통해 이와 관련된 외척세력의 문제는 사회 분열과 충돌을 만연시켰다. 조선시대는 어떤가. 각 고을의 수령이 부임하면서 가장 신경을 썼던 것이 호적(戶籍)을 정리하고 전정(田政)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호적은 다산(茶山)에 의하면 모든 부세(賦稅)의 원천이고 온갖 역(役)의 근본이었다. 지방의 수령들 중에는 호를 늘여 보고하여 징세액을 과다 계상함으로써 백성을 수탈하거나, 호를 줄여 이권에 개입하는 등 호적은 민을 통제하는 최유력의 수단으로 동원되었다. 이 같이 우리의 전통적인 호적제도는 지금의 아름다운 해석과는 동떨어지게 아픈 모순을 안고 왔다.
성(姓)을 성(性)으로 인식한다는 유교적 가치관의 호주제 옹호론자 들에게 되묻고싶다. 중용(中庸)의 천인론(天人論)에서 맹자는 ‘태어난 그대로가 性’이라 하여 후천적으로 조작된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물론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을 뒷받침하는 논리이지만 이같이 성선사상은 인간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에서 출발한다. 하물며 성(姓)으로 인해 고통받는 아동들이나 여성들에 대한 배려를 외면해서야 현행의 호주제가 올바른 유교적 가치관임을 설득할 수 있을까.
호적제도든 호주제도든 우리의 역사는 시대를 반영해 운용해 왔던 점은 기록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만약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 금번의 호주제 개선안이 발전적인 사회의 윤리망을 구축하는 데 미흡하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이 또한 소중한 역사적 자산으로 후손들에게 전해주어 향후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도가 반복되면서 사회 공동체가 더욱 건강해지고, 우리도 사회적 합의의 역사를 갖게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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