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대, 더이상 안된다-
참 드문 일이다.
정해진 시간에 따라 바닷물이 들어왔다 나가듯, 그렇게 늘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어쩌다 일이 생겨도 서로간의 이해타산에, 전권을 쥐고 있는 허가관청의 눈치를 보느라 처음 떠들어대던 목소리는 베잠방이에 바람새듯 슬그머니 자취를 감춰버리곤 했었다. 그 때마다 ‘이래도 되느냐’는 자성과 함께 주변의 비난이 일기도 했지만, ‘살아나가려면 어쩔 수 없다’라는 생존의 방정식이 곧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해 6개월여 동안 인천항은 물론 지역 전체를 뜨겁게 달군 제2연륙교 주경간폭 문제는 ‘일대 사건’이 되기에 충분했다. 항만 관련 업·단체를 시발로 시민·사회단체 등 분야와 나이에 상관없이 지역 각계 인사들이 ‘범시민대책위원회’의 이름아래 모여 예전에는 결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힘을 보여주면서 결국 정부로부터 일정 부분 양보를 얻어내는 성과를 일궈낸 것이다.
제2연륙교 문제가 해결된 지 2개월남짓, 최근 해양수산부가 발표한 ‘항만물동량 예측결과’가 다시 불씨를 지피고 있다. 이번에는 제2연륙교 때처럼 인천만이 아니라 부산, 광양 등 남해안 항만도시들도 시끌시끌하게 만들고 있다.
해수부는 5년마다 연례적으로 벌이고 있는 ‘전국 항만물동량예측’ 연구용역을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에 의뢰, 지난해말 결과를 납품받았다. 그러나 공식 발표도 되기전 그 내용이 알려지면서 해당 지역들로부터 거센 반발이 일기 시작했다. ‘물동량예측결과’가 조작됐다는 것이 요지다.
사정이 이처럼 다급해지자 해수부는 장관과 차관, 항만국장 등 고위 관계자들이 잇따라 기자회견을 갖고 용역의 배경을 설명한 뒤 공청회를 통해 지역의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쳐 다음달 중 최종 결과를 확정짓겠다며 진화에 나섰다.
이러한 취지에서 지난 25일 열린 ‘전국 항만물동량예측 토론회’는 그러나 의혹을 씻어주기는 커녕 오히려 부풀리는 결과만 빚었다. 이날 참석한 각 지역 전문가들은 충분한 검증을 거쳐 확정시기를 2∼3개월 늦춰줄 것을 강력히 요구했으나 해수부는 토론회에서 나온 의견을 반영, 다음달 최종 결과를 내놓겠다는 당초 입장을 고수했다.
항만에 대한 자부심이 유난히 강한 부산과 광양은 지금 마치 개전(開戰)전야와 같은 분위기다. 해수부를 성토하는 범시민적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이번 용역에서 오는 2011년·15년·20년 예측물동량이 불과 5년전인 지난 2000년 수치보다 무려 92%·89%·100%가 줄어든 인천도 격앙돼 있기는 마찬가지다. 아직 존속하고 있는 ‘범대위’를 중심으로 대응방안이 신중히 검토되고 있다. 표출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처럼 각 항만들이 물동량예측결과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이 내용을 토대로 향후 수 년간의 항만기본계획이 세워지기 때문이다. 즉, 항만인프라에 대한 정부의 투자규모-적게는 수천억 원에서 많게는 수조 원까지-가 좌우되는 것이다. 각 항만도시마다 최고의 고부가가치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는 항만의 활성화에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항만물동량예측결과’를 바라보는 인천의 정서는 그러나 부산이나 광양과는 다르다는 점을 해수부는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부산과 광양은 그 동안 정부의 투 포트(Two-Port)정책 기조아래 엄청난 지원과 시설투자가 집중돼 왔다. 인천은 어떤가? 투 포트에, 개제가 국책항만정책(부산·광양·평택)에 밀려 철저히 홀대와 소외를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인천항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결정들이 인천과 전혀 상관없이 이뤄져왔다. 그러한 서운함이 한 꺼번에 폭발한 것이 바로 제2연륙교 문제였다.
가야 할 길을 바로 가지 않고 굳이 에둘러 가려 한다면 이같은 사태가 또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 보장할 수 없는 것이 지금 인천의 분위기다. /이인수·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