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향 이대로 안된다
이달 초 일간지는 일제히 세계적인 마에스트로 정명훈씨가 서울시교향악단 상임지휘자로 취임하기 위해 정식 계약을 체결했다는 내용을 중요 기사로 올렸다. 앞으로 3년간 서울시향을 이끌어갈 정씨는 다음달 외국인 부지휘자 2명과 입국,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그는 서울시의 러브콜에 대해 “조국의 클래식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싶다”고 강한 의지를 내보였다는 후문이다.
앞서 언론에서는 정씨가 서울시향 지휘자에 내정, 또는 유력하다는 기사를 앞다퉈 쏟아냈다. 때맞춰 이명박 서울시장은 세종문화회관 산하기관에서 재단법인으로 독립하는 서울시향 지휘자에 로린마젤급 세계적 음악가를 초빙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자치단체장이 임기 하반 목표를 문화행정에 두고 우선적으로 시향지휘자 영입과 독립법인화를 추진하겠다고 한 선언이 실행파일로 옮겨진 셈이 됐다.
특히 정씨에 대해 ‘한국이 배출한 가장 훌륭한 지휘자’라는 국내 음악계의 평가를 더하지 않더라도 1998년 KBS교향악단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취임했다 부지휘자 영입 문제로 마찰을 빚은 끝에 네달만에 사임하면서 “여건이 갖춰질 때까지 한국에서 일체의 고정적 지위를 맡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어 이번 취임의 의미가 특별하다.
최근 몇년 동안 국내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지휘자 부재’가 풀 수 없는 문제로 떠올랐다. 국내 두축으로 꼽히는 서울시향과 KBS교향악단을 비롯해 지자체가 운영하는 시립교향악단마다 상임지휘자 영입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 왔다.
KBS교향악단의 경우 러시아 출신 상임지휘자 드미트리 키타옌코가 지난해 송년음악회를 끝으로 6년동안 지켜오던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KBS측은 후임자 선정은 덮어둔 채로 악단의 활성화와 수익증대 방안, 독립 여부, 단원 처우 등 여타 문제를 포함한 교향악단 장기발전 방향에 대한 외부 컨설팅 작업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컨설팅 답안이 나올 때까지 올해의 연주는 객원지휘자 체제로 소화해야 할 형편이다. 즉 ‘악단을 잘 운영하기 위한’ 컨설팅이 상임지휘자 공백을 초래한 꼴이 됐다.
이와관련 음악계에서는 자율적 경영도, 마땅히 책임지는 상급기관도 없고 연주력 향상이나 청중동원에 대한 복안도 없이 표류하는 현실이라고 일갈한다.
지난해 2월 금노상 상임지휘자가 물러난 이후 수장 없이 1년을 버텨온 인천시립교향악단의 상황은 KBS교향악단보다 훨씬 안좋다.
당시 인천시는 후임자 공모에 실패하자 당분간 부지휘자 체제로 가면서 객원지휘자 중 적임자를 찾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매번 객원지휘자와 호흡을 맞출 경우 레퍼토리는 그만큼 풍부해질 것이고 실력없는 단원은 자연도태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얹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정상급 객원지휘자 초청에서부터 어긋나기 시작, 내놓을 만한 기획 무대는 커녕, 1년간 끊임없이 밑으로 밑으로 추락하는 아픔을 겪었다. 게다가 여전히 수장은 공석인 상태다.
인천시는 ‘원인이 늑장행정 탓’이라는 주위의 곱지않은 눈초리에 대해 “누구나 인정할만한 지휘자 영입을 위해 물밑 접촉을 지속적으로 시도해 왔으며 아직도 진행중”이라는 변을 내놓는다. 한술 더해 올해를 인천시향이 구태를 벗고 성큼 도약하는 재창단의 해로 잡고 그동안 사안별 추진방안을 모색한 끝에 이제 막바지 조정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호언했다.
상임지휘자는 악단의 조련사이자 구심점이다. 지휘자의 카리스마와 추진력 , 단원 장악력, 음악적 열정이 교향악단의 수준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탄탄한 앙상블을 구축한 악단이라면 잠시동안의 상임지휘자 공백을 무리없이 견딜 수 있겠으나 애석하게도 오랜 전통과 그만한 실력을 갖춘 악단은 국내 어디에도 없다.
물론 스타 지휘자 한사람의 영입으로 흐트러진 악단이 하루아침에 제자리를 찾을 수는 없겠으나. 서울시향처럼 한국 출신 마에스트로든, 부산시향처럼 외국인 지휘자든(부산시향은 지난달 수석 지휘자로 러시아 출신의 알렉산더 아니시모프를 선정했다), 하루 빨리 인천시향은 지휘자를 찾아야 한다. 지금도 이미 너무 늦었다. /김경수기자 (블로그)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