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은 충분조건인가 / 정흥모 경기본사 정경부장
지방분권에 대한 요구가 많다. 분권형 국가 만들기에 대한 참여정부의 의지가 분명해 보이는데도 지방의 분권요구는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중앙과 지방이 여전히 범위와 속도에 대한 차이를 노출한다. 지역간에도 여건에 따라 요구하는 내용이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지역간 입장차이는 행정수도 이전이 논란의 핵으로 부상했을 때 극명하게 드러났다. 지방은 분권·분산·분업, 3분을 요구했다. 여기에 비해 수도권은 마치 분권만이 지방분권의 전부인 듯한 태도를 보였다. 수도권이 경쟁력을 잃지 않으면서 3분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아주 미약했다. 당시 어떤 이는 ‘분권이 대안’이라는 논리로 위헌결정 논리를 옹호했다. 혹자는 ‘분권만이 대안’이라고도 했다. 내용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지방에서는 지금 분권만능주의가 비등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녹녹치 않다. 요구만큼 우려도 존재한다. 일단 참여정부가 내세우는 지역혁신도 이 같은 우려에 대한 전제조건인 셈이다. 그리고 이 같은 우려는 언제든 현실로 나타난다.
지난 14일 수원지방법원은 박신원 오산시장의 뇌물수수를 사실로 인정했다. 법원은 박 시장에게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 추징금 1천만원을 선고했다. 판결과 동시에 오산시장의 직무가 정지됐다. 이미 구속 수감된 화성, 광주시장과 직무가 정지된 안산시장에 이어 도내에서 네 번째로 기초자치단체가 직무대행체제에 들어섰다. 2000년부터 따지면 경기도에서 모두 10명의 단체장이 법정에 섰다.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 늘 하는 얘기로 행정공백과 재·보궐선거로 인한 예산 낭비, 지역 이미지 실추, 그리고 상처받은 시민의 자존심.
감사원이 먼저 칼을 빼들었다. 지난 12일 전국 16개시도의 행정부시장과 부지사를 대상으로 자치행정 감사설명회를 가졌다. 감사원은 이 자리에서 과도한 축제성 행사, 선심성 행사, 무분별한 개발사업법인의 설립 등을 억제함으로써 지방행정의 시스템 개선을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전윤철 감사원장은 “중앙으로부터 큰 권한이 이양됐으면 수반된 책임을 분명히 하라”고 요구했다. “동일한 민원에 대해 소극적이고 권위적인 처리실태가 계속될 경우 결재권자까지 소급해서 책임을 묻겠다”고도 했다. 선심의 냄새가 묻어난다. 심하게 듣자면 엄포로도 들린다. 감사원이 선심 좀 쓰고 엄포나 놓는 정도로 지방자치 시스템이 개선될 일이라면 걱정할 일도 아니다. 사직당국이 나서는데도 한계가 있고 우려가 있다. 앞서 거론한 10명의 단체장 가운데도 2명은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사법권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상태에서 검찰의 과도한 대응은 자칫 그나마 낮은 기반마저 무너뜨릴 수도 있다. 더구나 검찰이 나설수록 지방자치가 발전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문제는 과연 지방분권은 옳은 답인가에 대한 확신이다. 지방단체장에게 권한이 집중되고 그 단체장에게는 온갖 인연들이 난마처럼 얽혀있다. 이권에 목마른 사업자들이 빨대를 들이대고 있다. 정당과 동창회와 심지어 성직자들마저 공직인사에 개입한다. 단체장의 비리는 공직사회의 신뢰를 일순간 무너뜨린다. 그리고 마치 공식처럼 악순환하고 있다. 그런데도, 인사, 재정, 더 큰 권한을 주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이렇게 물어보자. 지방분권은 충분조건인가? 현실은 이미 ‘아니다’라고 답한다. 그렇다면 필요조건인가? 분권형 국가 만들기가 이 질문에 대한 정부의 대답이라면 지역의 정체성은 지역사회가 내 놓아야 할 전제다. 정의가 강물같이 흘러야 한다. 지역혁신으로 지역의 공간적 효율성과 생산성을 아무리 높인다 해도 토호들의 발호와 결탁을 꺾지 않고는 지방자치발전은 불가능하다. 고양이 앞에 생선을 맡겨두고 먹으면 처벌하는 악순환을 언제까지 되풀이 해야 하는가. 국회의원 후원회는 있어도 국회의원 3~4명 지역구보다 넓은 선거구의 단체장 후원회는 왜 없어야 하는가.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잘못된 정당정치를 바로잡아야 하지만 이미 어긋난 현실에서 단체장의 정당 공천제는? 주민소환제는?
지역사회의 역동적인 에너지를 기반으로 지방정치를 살리고 시정에 반영하는 제도개선이 먼저다. 감사원과 사법당국의 견제도 역시 충분조건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