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로 부국장 겸 사회부장
 
경인방송 재허가 추천이 거부되던 날, 한 투자증권사는 으례 서울방송 등 기존 지상파 방송의 파급효과를 분석했다. 결과는 ‘영향은 거의 없을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경인방송의 연간 광고액은 500억원 가량인데, 서울방송 5천699억원, 문화방송 1조153억원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경인방송은 서울방송과 방송권역이 겹쳐 여타 지역 민방과 달리 프로그램 100%를 자체 제작해야 했기에 전국 10개 지방 민방 중 유일하게 적자를 내왔다. 여기에 서울로의 권역확대가 제한되고 역외 재송신도 불가해, 구조적인 적자구조는 지난 7년여간 부어온 878억원의 자본금을 잠식시켰다.
재무구조가 취약하다며 방송위원회가 내린 경인방송의 재허가 거부에 대해 방송권역을 엄격히 제한해 광고수주를 ‘미미한’ 틀에 짜넣었던 방송위원회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은 그래서 새겨들어야 한다.
공익을 추구해야 할 언론, 그 중에서도 분권화 과정에 있는 지방의 척박한 언론 환경을 외면한 채 언론과 관련한 국가기관이 서울종속형의 (광고)시장경제 체계에 지방언론을 방치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사실 서울 아닌 수도권내 지방신문도 속사정이야 조금씩 달라도 큰틀에서 경인방송과 닮은 꼴의 처지다. 서울방송의 기득권과 견제에 적자구조에서 헤어나지 못한 경인방송 처럼 인천 경기지역 신문들도 가까운 거리의 서울지역 중앙지의 집중적이고 무차별적인 공략으로 매출액은 여타 지역 지방신문과 비교해 턱없이 낮아 제주지역 신문사들과 겨우 견줄 수 있을 규모에 불과하다. 십수년간 적자구조에 거액의 자본금이 잠식된 경우도 그렇다. 경인방송의 광고액(매출액)은 그래도 다른 지역 지방의 민영방송보다 나은 편이다. 서울방송과의 영역이 겹쳐 재무구조가 악화된 것이 더 큰 문제였다.
경인방송 사태는 이래저래 ‘서울공화국’이란 초일극 도시에 인접한 3대 도시 인천의 취약한 문화인프라, ‘수도권’이란 용어로 포장된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허울을 다시 한번 드러내 보이고 있다.
지난 97년 ‘인천방송’으로 개국한 경인방송은 짧은 역사지만 서울 아닌 ‘수도권’에 위치한 지방방송으로 꽤나 굴곡이 많았다.
91년 서울방송 개국을 허가한 정부는 94년 부산 대구 광주 대전등 4개 직할시에 대한 민방허가를 발표하면서 인구 200만을 넘어선 인천에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서울방송과 방송권역이 겹친다는 것이 이유였다.
방송을 통한 지역 공동체 문화의 형성, 지역정체성에의 기여, 지역의 이익 등은 철저히 무시한 중앙집권적이며 독선적인 발상이 아니면 그럴 수 없는 일이었다. 지방방송이 의미하는 것이 엔터테인먼트나 단순 정보전달에 그치지 않는 것이라면 서울방송에 인천의 ‘지방성’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인천방송은 인천민방 설립을 촉구하는 범시민대책위의 활동에 힘입어 울산, 전주, 청주등과 함께 2차 지역민방에 속해 97년 10월에야 개국했다.
그러나 경인방송은 서울진출이 제한되고 역외 재송신이 막히는 등 협소한 방송권역으로 적자가 누적됐다. 규모의 경제에 실패한 것이다. 또 한편으로 심각한 것은 권역확대에 치중하면서 로컬방송으로서 지역성에 치명적인 한계를 드러낸 것이고, 지역에서도 그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처지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송환경, 적자구조는 지방, 특별히 서울 아닌 수도권의 언론, 출판문화의 환경에서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이었다. 현재와 같은 서울종속형 시장경제 체제 하에 방치된 환경에서, 더욱이 공익을 추구하는 지방에서의 민간방송의 입지는 생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방송법에는 재허가 거부 이후에 대한 조항이 없다고 한다. 분기점에선 인천, 경기지역의 방송언론에 대해 중앙정부의 일방적 처분이 아닌, 지역의 논리로 참된 지방의 공익을 추구할 수 있는 전파를 생산해낼 수 있도록 각계의 지혜와 힘을 모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