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짜고 치는 예산 심사 상임위와 예결 특위 >
인천시의 내년도 살림규모가 확정됐다. 일반회계 2조3천790억원과 특별회계 1조5천544억원으로 4조원에 가까운 규모다.
올 시의회의 예산심의 과정을 눈여겨본 시민들이라면 각 상임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거치며 널뛰기하듯 달라지는 예산규모에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국회든 지방의회든 이듬해 예산은 각 상임위의 사전 심의를 거쳐 예결특위를 거치게 돼있다. 상임위에서 삭감 혹은 증액했던 예산이 예결특위에서 부활하는 등 조정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나, 올해 인천시의회의 경우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일주일 여에 걸쳐 각 상임위가 밤늦게까지 논의를 거쳐 삭감시켰던 예산이 불과 3일간의 예결특위동안 96%가 부활됐다. 경인고속도로 직선화사업과 관련해 시가 확보한 수백억 원의 극가 예산을 전액 삭감할 것처럼 기세 등등했던 시의회는 국고를 더 확보하라는 전제조건을 내세워 예산안을 가볍게 원위치시켰다. 그 외 예산도 대부분 다시 살아나, 시가 처음 시의회에 제출한 금액보다 불과 14억5천만 원이 삭감되는데 그쳤다.
‘직선화 사업 무산 위기’ 운운하며 연일 비중 있게 다뤘던 언론이나, 피부에 와 닿는 예산은 아니었어도 지자체의 주요 사업이 시의회 제동으로 추진되지 못할 것이라 여겼던 시민들로서는 예산의 부활·삭감 여부를 떠나 뭔가에 희롱 당한 기분이다.
상임위 심의과정에서 ‘전액 삭감’이라는 최악의 결론이 났을 때는, 그 만큼 해당 사업의 성격과 추진과정에 문제가 많았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단계 심의에서 100% 가까이 되살아났다는 것은 모종의 은밀한 약속이 전제되지 않았나 의구심을 갖게 한다.
‘상임위의 심의 존중’은 국회에서도, 지방의회에서도 오래 전부터 제기돼온 문제다. 그러나 실제 지켜지는 경우는 드물다. 일단 상임위에서 논란이 됐어도 예결특위에 가서 정치적으로 처리하면 된다는 의식이 팽배한 때문이다. 도덕적 권위와 절차적 신중함이 국정이나 시정 운영의 근간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손바닥 뒤집듯하는 이러한 행태는 지방 의회나 의원에 대한 존경심은 커녕 은근히 하대하는 시중의 여론을 뒷받침하고 있는 셈이다.
얼마전 끝난 정기국회 예결위의 새해예산안 심의에서도 구태는 반복됐다.
상임위별 예산심사에서 여야는 4조원을 증액했다. 정부·여당은 내년의 경기침체를 감안해 1조원 가량을 더 증액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적자예산을 줄이기 위해 최대 7조 5000억원을 삭감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정부·여당의 추가증액 방침이나 야당의 삭감 주장은 말은 그럴듯하지만 표리부동하다. 이런 부분은 상임위에서 신중하게 다루어졌어야 했다. 마지막에 정치적으로 처리하겠다는 속내가 드러나 보인다.
인천시의 새해예산안은 경제가 어느 때보다 어려운 가운데 집행될 예산이다. 얼마를 늘리고 줄이느냐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늘리고 줄이느냐는 더욱 중요하다. 민생을 위한 예산은 늘리고,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예산이나 선심성 예산 등은 과감하게 삭감해야 한다.
분야별 쓰임새를 살펴가며 이렇게 조정해놓은 예산이 예결특위에 가서 360도 뒤집어진다면 상임위가 구태여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며 논란을 벌일 필요가 없었다. 시민들이 상임위 무용론을 제기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시의회의 예산심의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바로 시민의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 어떻게 쓰이는가를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수 십년간 되풀이되어 온 이러한 퇴행적인 예산 심의의 배경에는 시민들의 이기주의가 자리잡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한 자에게 축하를 보내고, 과정상의 비상식과 비윤리적인 행위는 눈감아 온 우리 사회의 불감증이 만들어 낸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소위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어찌 이용하기를 마다하겠는가 말이다.
이제부터 언론이나 시민 감시단체들은 금번의 예산심의 과정에서 뒤바뀐 사례들을 잘 정리해 두어, 1년 후 결산 심사 시에 꼼꼼한 비판을 할 채비에 들어가야 한다. 눈을 부라리고 목에 힘을 주어 예산이 배정된 사안들에 대하여 집요한 뒤풀이가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손미경기자 mi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