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지역 경실련의 재건을 기대하며/ 정흥모 경기본사 정경부장
비정부기구를 통칭하는 NGO는 정부와는 독립적으로 영리목적 없이 공동선을 지향함으로써 공동체의 통합을 꾀하는 조직들로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시민단체란 말로 부른다. 정부가 권력과 공공의 영역이고 시장이 기업과 영리의 영역이라면 시민사회는 유권자와 소비자의영역, 즉 제3의 영역이다. ‘노동의 종말’로 유명한 제레미 리프킨은 노동자 없는 세계에서의 유일한 구원요소를 이 제3의 영역에서 찾았다. 바야흐로 시민사회의 중요성이 날로 증대되고 있다.
지난 세기 90년대 이후 세계화에 맞서는 각종 NGO들의 활동이 세계무대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이 시기 우리나라에서도 시민사회의 폭발적 성장을 목도할 수 있었던 데는 이들의 역할이 사뭇 컸던 데 기인한다. 특히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는 비판에서 보듯 영향력과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중앙의 시민단체들과 달리 지역 시민단체들의 활약은 많은 제약과 어려움 속에서만 가능했다. 권력이랄 게 뭐 있었겠는가. 공동체에 기반하고 자발적 참여에 기초하는 풀뿌리조직으로서의 한계와 늘 싸워야 하는 형편이었다. 지금은 비록 통일, 여성, 인권, 복지, 의정감시 등 세분화 된 단체들이 다방면서 독자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지만 초창기 지역의 시민단체를 이끌었던 조직은 대체로 환경운동연합과 경실련 등 전국조직의 지역단위조직 정도가 먼저였다. 이 가운데 하나인 수원지역 경실련이 최근 구설수에 오르면서 뜻있는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어느어느 정치인 조직에 장악됐다는 소리가 나돌고, 경실련 부설기관인 사회경제연구소는 특정 정치인과 명망가들의 손에 넘어가 첫 행사를 치르기도 했다. 내분 때문이란 얘기도 있고, 경제문제 때문이란 얘기도 있다. 이유야 어디 있건 시민단체에겐 나름의 사회적 신뢰와 인정이 필요하다는 전제 하에 우리는 두 가지 경우를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한다. 먼저 이사장을 비롯한 신임 명망가들의 입장이다. 이사장의 경우 시장과 1급 공무원을 역임한 고위 공무원 출신으로 퇴임 후에는 인천발전연구원장과 경기개발연구원장을 역임했다. 두 번의 총선출마 경험도 있다. 그가 공직에서 은퇴하고 연구원 책임자로 입성할 때만해도 시빗거리가 되지는 않았다. 공직에서 쌓은 경륜도 경륜이지만 연구원장에 걸맞는 학문적 깊이와 역량을 지역사회가 인정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입성당시 밝힌 포부에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그는 당시 자신이 밝힌 포부의 설계도를 미처 그리기도 전에 더 높은 권력을 향해 사표를 던졌다. 연구에는 미련 없어 보였는데 무슨 연구가 또 남았는지 모르지만 이번에는 현직 국가 공무원을 함께 대동하고 시민단체의 문을 두드렸다.
누구누구가 경실련 연구소를 접수했다는 풍문이 들린다. ‘접수했다’는 말이 다소 생경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 당사자가 먼저 명쾌하게 해명하고 이해를 구할 일이다.
경실련 활동가들의 입장도 설명돼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지난날 온갖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맹렬하게 활동했던 경실련의 활동을 기억한다. 정계의 중진들이 추풍낙엽처럼 우수 떨어져 나갔던 16대 총선 당시, 낙천낙선운동에서 보여주었던 시민단체들의 연합활동을 잊지 않고 있다. 수원에서 쓰레기봉투값 인상에 대항해 벌였던 시민단체의 진정한 사회적 서비스를 기억한다. 주로 회원들의 회비에 의존하는 시민단체로서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지방정부의 보조금 사업을 과감히 유보했던 결단을 기억한다. 가끔 정치에 입문하려는 사람들이 경력관리 차원에서 시민단체를 활용하고, 지나치게 명망성을 추구하는 일부에 의해 방해받고, 보조금에 의존하면서 개별 단체장들과의 친소관계로 비난을 받은 적이 있긴 하지만 지역시민단체들의 활동은 지금까지 대체로 인상 깊었다. 이러하기에 이제와 새삼 자신의 영역을 마치 헌신짝 버리듯 내던지는 이유가 어디 있는지 정도는 설명돼야한다. 항간의 소문처럼 내분 때문인지, 아니면 몇 천만원짜리 용역을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는 이사장의 공약이 필요했는지.
새롭게 참여하는 사람이나 기존에 조직을 가꾸던 사람 모두에게 시민단체로서의 도덕성은 엄격히 요구되게 마련이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으로서의 시민단체의 생명은 도덕성에 있고, 그 도덕성은 공심(公心)을 기본으로 한다. 공심을 잃어버린 곳에 시민단체가 설 자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