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어업 지도선과 해양환경 감시선 등 인천시 관공선과 30년동안 함께 한 사람이 있다.
 지난 74년 19세의 나이에 임시직으로 처음 관공선 선원으로 인연을 맺은 김수길(49)씨가 바로 그다.
 김 선장이 주로 생활한 관공선은 어업지도선. 98년까지 김 선장은 인천시 수산과 어업지도선에서 선원, 갑판장에 이어 선장에 이르까지 모든 역할을 담당했다.
 그는 다시 2002년 시 수질보전과로 옮겨 처음 도입된 해양환경조사선의 선장직을 맡았다.
 정식으로 관공선과 인연을 맺은 것은 78년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다. 임시직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던 그는 진정한 뱃 사람이 되기 위해 기관, 통신, 항해에 관한 자격증을 모조리 취득했다.
 김씨가 처음으로 몸을 실은 배는 17t 어업지도선이었다. 최근 항해의 필수 장비로 일컬어지는 레이더, GPS 등은 꿈도 못꾸던 시절이다. 그저 선원들의 감각과 캠퍼스, 자 등으로 항해를 했다.
 피 끊는 20대 초반 청춘에게 며칠씩 배에서 생활하는 관공선 생활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선들의 어업 지도를 하기위해서는 어선들과 같이 배에서 밤을 지새우고 육지에는 1주일에 한 번씩 나오기도 벅찼기 때문이었다.
 또 항해 도중 만나는 돌풍과 암초는 생명의 위협 그 자체였다. 75년 인천 소속 인광망 목선이 충남 가이도에서 좌초됐다는 소식을 접한 시 어업지도선은 해경과 함께 어민들을 구하기 위해 긴급 출동했다.
 그러나 새벽 안개와 갑작스런 돌풍으로 자신들도 언제 좌초될지 모르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인천 연안부두를 떠난지 6시간만에 가이도에 도착했고 어민들을 무사히 구출할 수 있었다. 그의 선원시절의 작은 무용담이지만 아직도 머리속에는 크게 자리잡고 있다.
 김 선장은 최근 인천과 여수를 수시로 왕래하고 있다. 올해 말 준공을 앞둔 수질보전과 청소환경감시행정선 건립 과정을 감독하기 위해서다.
 “이 청소행정선이 건립되면 먼 바다에서도 얼마든지 바다를 청소할 수 있다”며 그는 벌써부터 들뜬 기분을 내보였다.
 그의 또 하나의 자랑거리로 남아있는 것이 ‘인천 앞바다 바로알기’ 해양탐사선의 선장으로 활동했던 기간이다.
 탐사대원들과 같이했던 기간이 비록 길지는 않지만 바다 생태계를 생각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한 새로운 시간이었다.
 김 선장은 “몸 건강상태가 허락할 때까지 관공선을 지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좋은 후배들이 자기의 자리를 이어받아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노형래기자trueye@in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