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시험장에 갔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합니다. 대학생이 되고 싶은 간절한 소망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됐습니다. 이 감동은 저같은 처지의 사람 외에는 아무도 모르겠지요.”
 전국적으로 수능시험이 치러지던 지난 17일 인천여고 제26고사장. 맨 앞 자리를 지키고 있는 수험생은 뜻밖에도 40대 여성이었다. 감독교사도, 수험생들도 흘깃흘깃 중년의 여성을 쳐다봤지만, 아랑곳않는 표정이었다.
 김정숙씨(43·부천시 소사구 역곡동)에게 이 날은 영원히 못잊을 날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병수발을 하느라 초등학교밖에 마치지 못한 어린 섬 소녀의 30여년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전남 비금도에서 살았는데 다섯살때부터 하반신을 못쓰시는 부모님 병간호를 했습니다. 초등학교를 겨우 마치기는 했는데, 형편이 어려워 더 이상 공부를 할 수 없었지요. 중학교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워 담 뒤에 서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어린 남동생 뒷바라지를 하다 결혼을 하고, 두 딸을 낳아 기르느라 공부를 하고 싶다는 꿈이 꿈으로 끝나버릴 듯 하던 지난 2000년, 한 성당의 야학 안내책자는 김씨의 눈을 번쩍 뜨게 했다.
 “부평4동 성당에서 무료로 운영하는 성심야학이었어요. 2년동안 중학 과정을 가르치는 곳이었습니다.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이라곤 거의 없었으니 중학과정을 배운다는 게 여간 어렵지 않았습니다. 근 1년을 헤매기만 했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얼마나 갈망하던 공부였는데…. ”
 매일(월∼토) 저녁 5시부터 밤 10시까지 수업을 듣고 낮에는 일과 봉사활동을 병행했다. 노인들을 보면 부모님을 보는 듯해 바쁜 중에도 봉사는 미룰 수가 없었다.
 마침 중학교에 다니고 있던 큰 딸을 과외교사(?) 삼아 공부한 덕에 야학 2년째에 중졸검정고시에 합격했고 여세를 몰아 방송통신고에 입학했다. 방통고 수업을 받는 인천여고 교정에서 애국가와 교가를 부르며 김씨를 비롯한 중년의 입학생들은 눈물을 펑펑 쏟았다. 내 교실, 내 교정이 있고 선생님이 계시고, 선후배가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수능을 보기위해 집을 나서던 새벽, 동고동락하며 향학열을 불태우던 선후배들의 격려메시지가 핸드폰에 연신 찍히고 한 후배는 시험장으로 김밥을 싸왔어요. 춥다고 목도리를 사준 선배도 계셨습니다. 시험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좌절하지 않을 거예요.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선후배들의 깊은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요.”
 김씨가 중심이 돼 운영하고 있는 인터넷 홈페이지 ‘성심카페’와 ‘인천여고 카페’는 모두 못다한 공부를 하며 희열을 느끼는 늦깎이 여학생들의 수다방이자 보금자리다. 이들은 졸업은 했지만 서로 힘이 되는 말을 해주고, 모은 회비로는 후배들 간식비를 지원해주고 있다.
 “엄마. 이렇게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있어요. 저 이런 모습 보니까 엄마도 너무 행복하시죠?” 어머니 묘소앞에서 행복한 눈물을 흘렸던 김씨.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해 봉사활동을 더 잘하고 싶은 것이 꿈이다. /손미경기자 mimi@in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