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염전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07년 인천에서였다. 지금은 공업단지가 된 가좌동의 갯벌이었다. 우리나라의 기후와 지형으로 보아 천일제염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한 일본인 기사 오오구라(奧大藏)에 의해서였다. 인천의 동부이던 그곳의 간척지를 택해 시험생산을 했던 것이다. 그때 그곳의 1정보에서 한해 12만근의 소금을 채취할 수 있었으며 질 또한 양호했다고 전해진다.

 소금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한시라도 없어서는 아니될 귀중품의 하나이다. 고대로부터 인류가 정착할 수 있는 곳은 소금을 얻기에 용이한 바닷가나 염호가 있는 곳이었다는 사실은 이를 잘 설명해준다. 그러니 예전의 약삭빠른 역대 왕조가 이를 놓칠 수 없었다. 전매권을 독차지 막대한 이익을 취했다. 오늘날의 천일염전은 약1천1백년전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에서 한 승려가 창안했는데 세계적으로 전파된 것이라고 한다. 그것이 중국에는 청나라때 가톨릭 선교사들에 의해 도입되었다고 한다.

 암염이 없는 우리나라로서는 예로부터 바닷물을 통해 소금을 얻었다. 바닷물을 길어다 끓여 만들었다. 이같은 원시적 방법은 몇십년전만 해도 서해안의 바닷가 마을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기록으로는 고려 태조가 최승로에게 제염권을 주었다고 하며 충선왕은 즉위하면서 도염원을 설치 소금을 국가에서 전매토록 했다. 조선조 태조의 즉위교서에는 위험한 바다에서 싸우는 해군 군사들에게 소금 이득권을 주라는 내용도 있다.

 아직도 인천 근교에는 버려진 폐염전이 많이 남아있다. 남동구 관내의 서창동과 시흥시의 방산동 일대이다. 이곳은 지난날 염전지대로 유명했던 곳이다. 주안 남동 군자등지의 염전은 매립되어 공업단지화 했으나 이곳은 옛 모습 그대로이다. 광활한 터전 옛 모습으로의 재현 등 얼마든지 활용할 수가 있다. 남동구는 진작부터 이 일대를 해양생태공원으로의 자연학습장을 계획하고 있다.

 지난주 남동구가 유치원 지도자들을 초청 소금만들기 재현 등 설명회를 가졌다고 한다. 점차로 잠식되어 가는 해양환경을 온전하게 보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