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최용규 의원(인천 부평을)이 주관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환수특별법’ 공청회가 국회에서 열렸다.
 송병준 후손들이 부평 미군부대 일대가 자신의 토지라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역사회가 들끓어 비로소 특별법 제정이 공론화된 지 9개월이 지나서다.
 2003년 12월22일, 느닷없이 송병준 후손들의 소송사건을 접한 인천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일제히 성명을 내고 ‘시민의 투쟁으로 되찾게된 미군기지를 친일파 후손에 빼앗길 수 없다’고 거세게 비판했다. ‘부평미군부대 공원화추진 시민협의회’는 곧바로 ‘친일파 재산국고 환수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여나갔고 ‘우리땅 부평미군기지 되찾기 인천시민회의’는 소송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벌여 2주만에 1만명을 돌파한 서명 명부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친일파 후손들의 땅 소송 판결은 대다수 시민의 생각과 괴리가 있다. 17일 공청회에서 발제한 고려대 백동현 박사에 따르면, 현재 확인되고 있는 친일파 후손의 재산반환 소송은 27건에 이르는데, 이 중 원고승소율이 절반 가까이나 된다는 것이다.
 이완용 증손은 지난 97년 서울 북아현동 땅 712평에 대해 대법에서 승소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이같은 판결에 힘입어 올 3월에도 ‘을사오적’ 이근택의 친형이자, 법무대신을 지내고 일제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은 이근호의 손자가 오산시와 안산시의 6필지 땅을 되찾겠다며 소송을 내 다시 파문을 일으키는등 친일파 후손들의 소송은 끊이지않고 있다.
 친일파 후손의 이러한 재산반환소송에 있어 법조계의 입장에 일관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2001년 친일파 이재극 후손에 의해 제기된 소송에서 재판부는 각하 판결이유로 “반민족행위자가 반민족행위로 취득한 재산의 보호를 구하는 것은 현저히 정의에 어긋난다”고 밝히기 한다. 우리헌법은 3.1운동정신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음을 천명하고 있으니 법원도 그 헌법정신을 구현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항소심에서 “친일파의 땅이라도 법률적 근거없이 뺏을 수 없다”며 원고승소판결 이유가 제시된다. 국가가 친일파 후손의 재산권 보호를 거부하기 위해서는 헌법과 법률에 의한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한다는 것이며, 막연히 국민감정만 내세우는 것은 법치주의를 저버리는 것이라는 이유도 제시된다.
 이번 공청회에서 백 박사는 이완용, 송병준 등의 재산형성 과정이 대한제국 말기 일제침략과정에서 이뤄지고 있었으며, 특히 을사조약, 정미조약, 한일합방 조약 과정에서 각종 은사금, 특사금등이 주어져 매국의 대가성임을 밝혀냄으로서 ‘매국성’ 친일파에 대한 사유재산 보호 원칙 적용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이자리서 또 서원대 이헌환 교수는 국가자체의 존립을 부정한 반민족행위자들을 처벌하고 그 재산을 몰수한다는 것은 해방 후 헌법제정자인 국민의 기본의사이자 불문의 헌법 원칙임을 강조했다.
 지난 3월 제정된 친일진상규명법이 인적 청산의 계기가 된다면, 재산환수 특별법은 물적 청산을 이루며 해방 이후 미뤄져온 친일청산에 보다 내용있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점에, 부평미군부대 일대 13만3천평에 대한 소송의 심리가 진행중이다.
 지난 5월31일에는 애국지사 민영환 선생의 후손들이 부평의 이땅의 원소유자라고 밝히고 독립당사자 참가신청을 재판부에 냈다. 민선생 후손들은 민선생 자결 후 농장이던 이 땅을 송병준이 민 선생 어머니를 속이고 협박해 빼앗았다고 밝힘으로서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송병준 후손들의 소송 부지에 포함돼 당장 재산권 행사를 할 수 없게된 사실을 뒤늦게 알게된 부대 인근 대림아파트 주민 50여명은 17일 공청회에 나와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기도 했다.
 재산환수 특별법이 아직 상정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부평미군부대 부지소송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은 예측이 어렵다. 여대야소가 된 지금도 야당의 반발로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이 미뤄지고있는 형편에서 재산환수 특별법도 시작부터 난항이 예상된다.
 그러나 이제 특별법에 관심이 높아지고 친일파 후손의 소송행태에 비판 여론이 고조되고 있는 지금, 27차례에 걸친 땅소송은 부평미군부대를 시험무대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