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본사 제2사회부장)
조직의 크기를 불문하고 지도자는 도량이 큰 사람이어야 한다.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만고의 진리다. 그런데 도량이 큰 사람, 즉 대인(大人)과 소인(小人)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을 먼저 생각하고 스스로의 이익부터 챙기면 대부분 소인이 분명하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 구애됨이 없이 자신보다는 남의 입장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도량이 큰 사람은 대부분 대인이 확실하다.
상대방을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은 그가 어떤 지위에 올라가더라도 결코 대인이 되지 못한다. 대인이란 자신을 이미 버린, 오직 대의(大義)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버리거나 그렇게 할 각오가 확고한 사람을 일컫는다. 흔히 쓰는 말로 통이 큰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나 소인배는 그런 행동을 못하기 때문에 금세 표가 난다.
평소 존경하는 인물 백범(白凡) 김구(金九)선생의 일화를 소개한다. 백범선생이 상해(上海)임시정부를 찾아가 애국투사들에게 한 첫말은 임시정부 청사의 수위(守衛)로 채용해 달라는 청원이었다. 보통사람으로서는 쉽게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이것이 그가 상해 임시정부와 맺기 시작한 첫 번째 인연이다. 이렇게 출발한 그가 훗날 임시정부의 주석이 되어 어렵던 그 시대에 국민을 이끌어 가는 민족의 지도자가 된다. 후손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케 하는 교훈이다.
백범 선생이 정부청사의 문지기가 되겠다고 나선 것은 더 이상 나라가 도둑질 당하지 않도록 하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결의의 표현이었다. 또 조국을 되찾고 사라져버린 국혼(國魂)을 다시 살리겠다는 확고한 신념의 표시였다. 이런 일을 하는데 반드시 높은 자리에 있어야만 되는가 하는 것이 평소 백범의 생각이었다. 다시 말해서 남들이 우러러 보는 지위에 앉아 억지행세를 하며 작위적인 위엄을 보여야만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달성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그의 애국 애족적 정치철학이었다.
또 선생은 당신의 아호를 백범이라고 지었다. 이것이 보통 사람들과 다른 그의 특징이다. 백범 선생은 항상 양반계층이 아닌 일반 서민대중 편에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어떤 특정세력이나 집단을 편애하거나 어느 한쪽에 기울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지금의 이런저런 인물들과 특히 비교되는 점이다.
백(白)이라는 아호의 머리글자는 ‘벼슬이나 관직을 갖지 않은 백성’을 뜻한다. 조선시대로 보면 상민(常民) 즉 보통백성, 또는 여러 가지의 잡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최하층의 인민들에 속한다. 그는 이 같이 고통의 의미가 물씬 풍기는 글자를 이름의 맨 앞에다 붙였다.
범(凡)이라는 글자도 비슷한 의미가 담긴 말이다. 흔히 사회저변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먹고 사는 일에만 충실하는 밑바닥 인생인 필부필녀(匹夫匹女)들을 일컫는 말이다.
백범은 이렇게 자신을 최대한 낮추고 언제나 그들과 같은 수준, 같은 편에 서 있겠다는 자세를 견지했고 실천했다. 본명보다 더 자주, 또 더 널리 불리는 아호를 통해서 자신의 결의를 백성들에게 보여주며 함께 일했다. 또 일상의 처신을 항상 그와 같이 취하면서 민심을 이끌어 나감으로써 다양한 각계각층 백성들의 정점에 위치할 수 있었다.
날이 갈수록 나라 전체가 혼탁해지고 모든 것이 각박해지고 있다. 붕괴직전인 한미동맹관계, 고구려사 전쟁으로 비화된 중국과의 관계 등 대외문제는 물론이고 심각한 경제파탄, 수도이전 문제, 친일진상규명 문제, 국가보안법 문제 등 어떻게 해결될지 의문시되는 과제들로 나라 전체가 꽉 차가는 느낌이다. 아니 이런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은 여·야는 물론 사회구성원 상당수가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어느새 ‘적 아니면 동지’ 라는 이분법 논리에 빠져 상대를 쉽게 인정하지 않으려는 점 일지도 모른다.
원래 싸움이란 자신만이 잘났다고 우겨댈 때 일어나는 법이다. 먼저 나를 낮추면 싸움이나 다툼이 일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나라전체가 싸움판으로 변모한 듯 착각될 정도다. 사람들의 심성이 거칠고 사나워졌기 때문이다. 사회 구석구석이 이 지경이다 보니 새롭고 건설적인 아이디어, 창의성 등은 단 한 가지도 나오지 않고 상대방을 비방하는 것으로 시작, 거기서 끝나기 일쑤다. 백범 김구 선생 같은 도량이 넓은 지도자가 정말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