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면 인천은 야구 100년사를 맞는다. 인천은 ‘구도(球都)’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닐 정도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야구도입 최초의 도시다. 다시말해 ‘한국 야구의 대명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인천일보와 인천시, 대한야구협회는 공동으로 지난해 인천의 옛 지명을 딴 ‘미추홀기 전국고교야구대회’를 창설했다.
특히 지난 1955년 당시 주간지인 ‘주간인천’이 주최했던 ‘전국 4대 도시(인천·서울·부산·대구) 고교야구대회’를 부활, 침체된 고교야구의 재건과 부흥을 위해 출발했다.
따라서 미추홀기는 올해로 2년의 짧은 역사에 불과하지만, 과거 4대 도시 대회 전신으로서 깊은 의미가 있다. 전국 고교야구의 대표적인 4개 대회 못지 않은 ‘인천야구의 역사’가 깊이 새겨진 행사이다.
그런 인천야구가 이번 미추홀기에서 ‘100년의 야구사’를 스스로 무너지게 했다. 야구인들 조차 얼굴을 들지 못할 만큼 충격이 컸다. 야구 명문 팀 인천고, 동산고가 예선에서 나란히 탈락했기 때문이다.
생방송으로 중계된 개막 첫날, 인천고는 배재고와 예선 1회전에서 1-4로 패했다. 다음날 동산고는 경북고에 0-9, 7회 콜드게임패를 당했다. 인천의 마지막 자존심 제물포고마저 4-6으로 성남서고에 아쉽게 역전패했다.
충격은 단순히 져서가 아니다. 쉽게 무너질 팀이 아닌 올 대통령배와 대붕기 우승 주역팀들이 무성의한 경기를 펼쳤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인천의 어느팀도 37년 동안 인연이 없었던 대통령배를 인천고가 안아 인천야구 인의 ‘한(恨)’을 풀어 주었다. 또 감독이 교체된 동산고는 대붕기를 거머쥐어 출발이 좋았다는 호평을 받았다. 이 ‘겹경사’로 재학생, 동문은 물론 인천시민 모두가 열광적으로 즐거워했다. 무엇보다도 내년 ‘야구사 100주년’에 앞서 얻어낸 값지고 소중한 성과이기 때문이다.
그런 우승 주역들이 올 미추홀기를 통해 인천의 자존심과 아성, 위상 등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양심’ 잃은 무성의한 태도를 보여줄 수 있단 말인가. 이는 단순한 팀의 패배가 아니라 인천야구인을 비롯한 재학생, 동문, 시민 모두를 버린 행동이다.
스포츠는 이기는 팀이 있으면 반드시 지는 팀도 있게 마련이다. 얼마전 온 국민을 열광케 했던 아테네올림픽 여자핸드볼 한국-덴마크 결승전 경기가 생각난다. 2차례의 연장과 승부던지기까지 가는 진정한 ‘명승부전’을 펼쳐 전세계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았다.
젖먹던 힘까지 사력을 다한 선수들의 경기에 소름이 끼칠 만큼 전 세계가 놀라와 했다. 당시 매스컴들은 ‘금메달보다 값진 은메달’이라 할 정도로 한국 선수들의 경기력을 높이 샀다.
왜일까? 바로 ‘스포츠 정신’에 입각한 진정한 승부였기 때문이다. 비록 패했을 망정, 선수들의 역할인 최상의 기량과 실력을 발휘한 후회 없는 한판 승부를 펼쳤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스포츠 정신이다. 선수들이 최선을 다한 경기를 펼쳤다면 ‘승패’는 아름답다. 팀을 이끌고 있는 감독들 또한 선수 못지않게 찬사와 함께 존경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이번 미추홀기에서 보여준 인천팀들의 경기는 ‘스포츠 정신’에 더 붙여 ‘양심’ 마저 버렸다.
“대학 진학을 위한 전국 대회 8강전 제도 때문인가”, “우승팀으로서 손님 접대인가” 등 비난의 말들이 쇄도했다.
선수들을 이용한 승부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번을 계기로 완전히 뿌리 뽑혀야 한다. 청소년 국가대표로 차출돼 나간 주전들이 빠졌기 때문이라는 변명을 하는 선수 이외의 사람들이 문제다.
선수들은 지도자에게 야구 기술과 전술 등 모든 것을 전수받는다. 올바른 야구인으로 키우지 못하는 지도자는 스스로 떠나야 한다. 선수들의 사기와 팀 분위기를 망치게 하기 때문이다. 이젠 더 이상 ‘인천 야구 100년사’를 얼룩지게 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