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집을 지음에 있어 온통 벽돌만을 사용한다. 길이는 한자 넓이는 다섯치여서 둘을 가지런히 놓으면 이가 꼭 맞고 두께는 두치이다. 한개의 네모진 벽돌박이에서 찍어낸 벽돌이건만 귀가 떨어진 것도 못쓰고 모가 이지러진 것도 못쓰며 바탕이 비뚤어진 것도 못쓴다. 만일 한개라도 이를 어기면 그 집 전체가 틀리고 만다.』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나오는 봉황성을 지나면서 본 건물의 모습이다.

 흙을 빚어 찍어내는 벽돌은 인류의 가장 오랜 건축재의 하나이다. 메소포타미아 등 목재가 귀한 중동에서 벽돌 건축이 발달했었다. 이미 BC 4000년에 햇볕에 말린 벽돌이 건축에 사용되었으며 그 뒤로 구운 벽돌이 출현한다. 나일강 유역에서는 1만년전의 것으로 보이는 벽돌유물이 발견되고 있다고도 한다. 하기는 고대의 흙을 빚어 굽는 기술은 점토판에도 쓰였다. 점토판도 사실은 흙을 빚어 글자를 새겨 불에 구워낸 벽돌이었다.

 구약성경도 이런 저런 사정을 전한다. 출애굽기 1장14절에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고역으로 흙이기와 벽돌 굽기를 시켰다는 내용이 나온다. 크리스티앙 자크의 장편소설 『람세스』에서도 작가는 모세를 이스라엘의 나일강변 벽돌 굽기 감독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이보다 앞서 창세기 11장에는 바벨탑을 세우는 장면에서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는 대목이 보인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개화기의 벽돌건물로는 서울의 명동성당이 꼽힌다. 1890년에 건축한 고딕양식이다. 이제는 헐리고 없는 인천의 중화루나 역시 불타고 없는 양관 오례당도 붉은 벽돌 건물이었다. 그 시절만 해도 중국 상해에서 실어다 썼다고 전해진다. 그후 한참 뒤에야 도시 교외에 벽돌공장이 등장하는데 인천에는 지금의 남구 수림공원 자리와 경인선 송내역 인근에 공장이 있어 기차를 타고 다니다 볼 수 있었다.

 양평군민들이 벽돌모으기에 나섰다. 자연사박물관 유치를 위한 군민의 염원이 담긴 행사로 군민 한사람이 한장씩 모으는 운동이라고 한다. 『티끌모아 태산』-좋은 결실 있을 게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