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미리가 본 인천 지하철-귤현역
[기획]미리가 본 인천 지하철-귤현역
  • 승인 1999.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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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개통이 인천지역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주나.인천일보가박창화 인천전문대교수와이형석 가천문화재단 문화부장의협조를 얻어 오는 9월지하철개통을 앞두고 있는인천시의 지하철를구역별로 조망해본다. 본지는 모두 22회에 걸쳐각 역별로 변화될역세권의 환경과바뀌어질 교통문화를 비롯,주변의 지명유래와 문화재등을소개한다.

 귤현역은 귤현동 357 일원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천지하철 1호선 출발역이다. 주위 300m이내에 계산중학교가 있으며 인근에 일부 군부대가 자리를 잡고 있다.

 특히 서울시, 부천시 등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운반하기 위해 건설된 김포 쓰레기장 매립의 주도로로 이용하고 있는 수도권 쓰레기 수송도로가 이어져 있어 서울과는 불과 5~10분이면 접근이 가능한 위치다. 부평에서 김포나 강화 그리고 서울서부로 연결되는 지방도로 307호는 현재 15m에서 25~30m로 넓힐 계획이어서 앞으로 인천시 서구와 계양구 주민들의 서울 진입이 편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인천지하철 1호선의 차량정비와 수리 그리고 박차를 할 수 있는 차량기지가 귤현동 365일원 약 6만7천평의 광활한 대지위에 자리잡고 있다. 귤현역과 붙어있는 차량기지는 지난 95년에 착공하여 금년 6월이면 준공된다. 총공사비 6백70억원이 소요된 차량기지는 검사고, 주공장, 종합관리동등은 이미 완공되어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인천지하철 운영요원을 교육하고 훈련시키는 연수원도 이곳에 자리잡고 있다. 귤현역 역세권의 약 90%이상이 개발제한구역으로 도시계획이 지정되어 있어 일부 주거지역을 제외하고는 개발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지역이다.

 그러나 귤현역 동축 약 300m 거리에 있는 귤현동 새마을회관을 중심으로 주거기능을 정비 또는 확충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약5만3천평규모의 귤현지구 구획정리사업이 지난 97년 사업시행인가를 받아 본격적으로 개발에 착수했다. 내년 11월까지 택지개발이 완료되면 이 지역에 1천1백49세대 약 5천명의 주민이 살 것으로 예상된다. 이 지역은 천혜의 자연환경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 장차 인천에서 가장 살기 좋은 전원도시가 형성될 전망이다. 인천지하철 1호선이 개통될 경우 부평역까지는 20분, 인천시청까지 27분이면 도착할 수 있고 문학경기장까지는 32분, 남동공단까지는 36분, 그리고 종점인 동막역까지는 4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따라서 인천지하철을 이용하면 인천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 40분정도가 소요되므로 인천지하철 역세권안에 드는 거리는 1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아주 편리한 대중교통수단인 것이다.지명유래

 귤현(橘峴)은 「옛날 귤나무가 있었던 고개」라고 한자의 뜻을 풀어 유래를 설명하기도 한다. 그리고 계양산(桂陽山)은 「예부터 계수나무(桂樹木)」와 회양목(繪陽木)이 자생하여 계수나무의 「계」자와 회양목의 「양」자를 따서 만든 합성지명이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그러나 겉껍질이 노랗고 속은 마늘쪽처럼 여러개의 주머니로 이루어진 귤나무나 유자나무는 제주도나 남쪽지방에서 자라는 나무이고 인천지역 산야에서는 자라지 않는 수종이다.

 그리고 계수나무는 가지가 곧게 자라는 우아한 나무로 우리나라는 일본에서 들여 온 수종이며 매우 희귀한 나무이다. 또 우리나라 산야에 많이 자라고 있는 회양목은 관상수로 사랑을 받고 있는 나무로 계양산 일대에도 야생하고 있다. 그러나 계양산의 이름은 계수나무와 회양나무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고 행정지명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 그것은 고려때 이 고을이 안남(安南)도호부였을 때는 안남산, 계양도호부였을 때는 계양산, 또 고려 초기 수주(樹州)였을 때는 수주악으로 불렸기 때문이다.

 1985년에 발간된 「한국지명총람」(17권ㆍ경기편)에 보면 다음과 같다.

 ▲귤현리(橘峴里ㆍ굴재, 굴현):본래 부평군 당산면의 지역으로서, 굴재 밑이 되므로 굴재 또는 굴현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황어면의 노오지리 일부를 병합하여 귤현리라 하여 부천군 계양면에 편입되었다가 1973년 김포군에 편입되었다.

 ▲굴재-고개[고개]:「마리골에서 박촌리로 넘어가는 고개」라고 하였다. 그리고 「마리골」[마을]은 큰말 남쪽에 있는 마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1989년에 인천직할시로 편입되었다.

 따라서 「귤현」이라는 명칭은 본래 「굴재」였으며 일제시대인 1914년 행정구역 폐합때, 일본인 관리들이 「굴현」을 「귤현」으로 잘못 듣고 한자 표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굴재의 위치는 귤현동의 마리골마을에서 박촌리로 넘어가는 고개로서 현재 박촌동 프리나농원 북서쪽 해발 91고지와 68고지의 사이에 위치한 고개로 추정된다. 그리고 귤현동 큰말에서 작은 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술재)가 귤현이라는 주장도 있다. 「굴현」의 뜻은 고개가 높아서 통행이 불편하므로 고개를 파서(掘) 깎아 내렸기 때문에 「깎아내려 판 고개」란 의미라고 추정된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굴포천(掘浦川)을 들 수 있는데 이 강은 인천과 김포 사이를 운하로 연결하기 위하여 고려말과 조선중기에 공사를 벌였으나 원통고개(십정동일대)의 단단한 바위때문에 실패, 굴포와 원통고개의 땅이름만을 남겼다.

 따라서 귤나무가 많아 「귤현」, 계수나무와 회양목이 많아 「계양」이란 땅이름은 잘못된 해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인천일보, INCHEONIL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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