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전반 이탈리아는 밀라노공국, 베네치아공화국, 로마교황청, 그리고 나폴리왕국과 피렌체공화국의 5대국 병립시대를 맞이한다. 이탈리아가 오늘날까지 먹고살도록 만든 예술적 터전이 바로 이 가운데 하나인 피렌체공화국에서 비롯된다. 앞서 이미 100년 전부터 개인역량에 좌우되지 않는 체제를 성립시킨 베네치아공화국과 달리 당시 피렌체는 내분으로 100년 세월을 허비한 상태였다. 결국 개인역량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피렌체가 얻은 인물이 일명 메디치가의 사나이들이다.
 나중에 조국의 아버지로 추앙받게 되는 코시모는 이탈리아에서 제일가는 은행가 아버지 조반니로부터 막대한 부를 물려받지만 권력싸움에 밀려 사형선고와 국외추방을 경험한 끝에 내분의 시대가 마감하는 1434년 비로서 피렌체 통치에 나서게 된다. 코시모는 매우 현명했다. 무엇보다 스스로에 상처를 입힐만큼 강력한 비판정신을 소유했던 피렌체인들의 기질을 잘 이해했다. 임기 1년의 대통령직을 3번밖에 연임하지 않았지만 공화정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국내외 관계를 안정시켜 오래도록 평화체제를 유지했다. 그러나 코시모가 후대에까지 이름을 날릴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은 그가 육성한 학문과 예술의 덕이다. 그는 무엇이나 모으게 하고 만들게 했다.
 건조물이나 회화, 조각이나 고사본 같은 물건들을 소중히 했다. 아카데미아 플라토니카(플라톤 아카데미)를 창립해 피렌체를 고전연구의 메카로 육성해 갔다.
 몇년전부터 로마인 이야기로 우리나라에서도 일약 스타가 된 일본인 여류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그의 저작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를 통해 코시모가 사랑한 조각가 도나텔로와의 일화를 감동적으로 전해준다. 당시 도나텔로는 어깨를 겨룰자가 없을 만큼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코시모는 말년에 그가 생활고에 시달리지 않고 창작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유언한다. 유언장은 풍족한 수입이 보장되는 농원을 도나텔로에게 무상으로 준다고 작성된다. 도나텔로는 기뻤다. 이제 몰이해하는 인간들과 실랑이를 벌이지 않아도 되고, 가난 속에서 죽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게 됐다면서 몹시 좋아했다. 유언은 아들 피에로에 의해 성실히 이행된다. 그러나 1년도 지나기 전에 도나텔로는 피에로를 찾아와 농원을 돌려주겠다고 말했다. 왜냐고 묻는 피에로에게 예술가는 대답한다.
 “사흘이 멀다 하고 바람이 불어서 계사지붕이 날아가지 않나, 세금을 내기 위해 가축을 처리해야 하지 않나, 또 폭풍우라도 닥치면 포도밭이 엉망이 되지 않을까 얼마나 걱정이 되는지, 편안한 마음으로 창작을 하기는커녕 마음을 졸여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피에로는 크게 웃으면서 농장을 되돌려 받는다. 대신 도나텔로 명의의 계좌를 은행에 개설하고 농원수익과 맞먹는 금액을 주마다 불입해 줬다.
 이탈리아를 뛰어넘어 전 유럽으로 확산돼갔던 피렌체의 예술적 터전과 가치는 집권자의 이 같은 의지와 배려를 통해 이룩된 터였다.
 첫째 요인은 무엇보다 당시 예술품을 소장하기 위한 내수가 충분했다고 하니 이 같은 문화와 예술적 가치를 소중히 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기반이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 집권자의 관심과 세심한 배려가 더해졌다. 오늘날 문화예술을 대하는 행정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귀감 삼을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피렌체에 코시모가 있고 피에로가 있었다면 우리에게는 정조가 있었다. 당시 학문적 분위기와 예술의 발전, 그 이상을 넘나드는 국가의 원대한 이상과 포부가 ‘화성’을 중심으로 간직돼 있다. 최근 이곳에 이상한 징후가 날아들고 있다. 화성을 복원한다면서 농업발전의 구상이 담긴 ‘만석거’는 이미 날아갔거니와 용주사와 융건릉 사이에는 장삿속이 끼어들고 있다. 경기도는 한 걸음 더 나간다. 국가문화재로부터 500m, 도문화재로부터 300m 안의 건설공사는 문화제청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규정을 200m로 제한하는 조례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02년 1단계로 복원된 화성행궁은 최근 대장금 등 각종 드라마의 촬영장으로 각광받으면서 아예 이를 활용하려는 천박한 관광전략이 횡행한다. 무조건 알리는 것보다 무엇을 알려야 하는지를 정하는 일이 시급해졌다. 이제 문화예술인들이 나서야 한다. 천박한 개발지상주의에 맞서야 한다. 역사의식의 파탄을 막아야 한다. 지난 역사를 현대사로 인식하고 현대적 의미로 해석하는 창조적 열정으로 단 한치도 양보 없이 맞서야 한다.
 경기본사 정경부장 정흥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