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 상소법원의 판사이자 캘리포니아대학의 명예법학교수를 지낸 존 누난(John T.Noonan.Jr.)은 지난 86년 뇌물문제를 다룬 최초의 본격 전문서로 평가받는 ‘뇌물의 역사’(Bribe;The Intellectual History of a Moral idea)를 펴냈다.
 그는 여기서 뇌물을 ‘공공기능을 부정한 방법으로 방해, 왜곡하려 드는 일체의 행위’로 규정하면서, 특히 “후기 산업사회로 이행해 나가는 과정에서 재벌의 힘이 거대해지면서 그들이 쌓아올린 막대한 부가 공직사회를 부패시키는 또 다른 힘이 되고있다”고 지적한다.
 “뇌물은 하나의 법적 개념이다. 뇌물인가 아닌가 여부는 법이 결정해준다. 그러나 뇌물 관련 제반법규를 검토해 나가다 보면, 법률과 그 사회의 도덕률 사이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음을 알수 있다”. 존 누난은 언론 등 시민사회에서 요구하는 도덕율은 성문법의 그것보다 훨씬 엄격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불법 대선자금과 탄핵풍, 박풍 등으로 17대 총선이 열기를 더해가며 막바지에 이르던 지난 4월13일, ‘공직사회를 부패시키는 힘’은 부정부패 척결이란 선거구호를 비웃기라도 하듯, 인천시 선거관리위원장직을 수행하던 지방 법원 수장의 법복을 벗겼다.
 아파트 재건축 시공사 선정을 놓고 법정타툼을 벌이고 있는 조합원들의 폭로로 고위법관들이 재벌 계열 건설사의 ‘골프접대’ 를 받은 사실이 확인돼 전격 사퇴한 것이다.
 많은 정치인들을 부정부패의 늪으로 몰아넣은 금권은 과연, 그 무소불위의 힘으로 만인앞에 평등해야할, 그래서 국가의 기본질서와 민주주의를 지켜야할 마지노선까지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사회정의의 최후 보루’라 할 수 있는 법관들도 최근 우리사회 ‘이권 다툼’의 복마전으로 잇단 물의를 빗어온 아파트 재건축 사업 업체들의 조직적인 로비 대상에서 예외가 아니었다는 사실의 확인은 우리사회 전반의 심각한 도덕불감증을 새삼 되새기게한다.
 문제는 다시 법조 윤리와 법적 제도다. 시민사회에서 공직, 그것도 법관들에 대한 도덕율은 성문법의 그것보다 훨씬 엄격하다. 법은 서민 대중의 일상생활을 포함한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너무 중요하고, 때론 첨예하며, 또한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법관은 당사자나 대리인 등 소송 관계인을 접정 이외의 장소에서 면담하거나 접촉할 수 없다’는 법관윤리강령을 이번에 다시 들먹이는 일은 그래서 더 공허하다.
 법원의 경우 외부로부터의 감시 사각지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직 중에서도 법관에 대해서 만큼은 감사원의 감찰로 부터도 면제되어있다. 헌법에 따라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않고는 파면되지 않는다. 법관의 탄핵은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 및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 의해 이뤄지는데, 그 절차가 까다로울 뿐 아니라 아직 그러한 절차가 이행된 적이 없다.
 법조사회의 동류의식은 법 적용의 차별과 왜곡을 의미하는 ‘전관예우’을 낳았다. 이른바,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속어가 나오는 것도 이와같은 배경에서다. 많은 이들이 알게 모르게 이같은 법현실에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아직도 많은 시민들은 전문적인 변론보다 ‘안면’(顔面)변론이 효험을 볼 수 있다고 여긴다. 즉 자기 변호사가 판, 검사와 얼마나 잘 아는가를 변호사 선임의 우선 고려사항으로 삼기도 한다는 것이다.
 어떤 변호사, 혹은 브로커들이 판, 검사와의 교제비 등을 이유로 의뢰인으로 부터 돈을 받아 판, 검사를 위해 썼다면 그것은 뇌물죄에 해당할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그 교제비와 같은 관행이 여전하다는 지적에 우리 법조는 자유롭지 못한다.
 법관은 가장 개관적이고 중립적이며, 그리고 가장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는 자명하다. 국회가 그랬듯이 법원도 국민의 신뢰와 존중을 잃는다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크게 위협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