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우는 수천년을 두고 본래의 모습을 지녀온다. 외모로는 머리가 작고 이마가 넓다. 귀도 작고 뿔은 짧으면서 굵은 편으로 일자형이다. 눈의 동작이 느리며 성질이 유순 영리하고 인내심이 강하다. 그러나 일단 성질을 내면 요지부동이거나 객기(?)를 부려 사나워진다. 아무리 치고 때려도 육중한 몸을 꿈쩍않고 미친듯 날뛸 때는 물불 안가리듯 마구 받아 제낀다.

 대동야승 동각잡기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성계가 함경도에 있었을 때이다. 큰 소가 서로 싸워 여러 사람이 제지했으나 되지 않았다. 혹은 옷을 벗어 혹은 불을 피워 던졌어도 막지 못했다. 이때 그가 양손으로 갈라 쥐어 잡으니 싸움이 그쳤다.

 이럴때 소를 제압하는 수단이 소코뚜레이다. 코뚜레란 소의 콧구멍을 엮는 둥근 나무테인데 지금도 더러 집대문에 걸린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소를 잡아 먹었다는 표시로 악귀가 보고 도망간다고 해서 거는 일종의 축귀술이다. 코뚜레는 송아지가 자라 큰소가 될 무렵 성년식하듯 치른다. 소의 두 콧구멍 사이를 뚫어 꿰어 아무리 사나운 소라도 사람이 하는대로 이끌리도록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마음을 놓아서는 안된다. 순식간에 사람을 받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유난히 사람을 잘 받는 녀석이 있어 몇사람 받았다는 식의 전과(?)가 따라 붙는다. 그리고 이런 사납고 고약한 소를 일러 「찌러기」라고 하는데 민속학자 최래옥 교수에 의하면 찌러기에 대한 지방마다의 방언이 있어 재미있다. 즉 전북 남원지방에서는 찌럭데기 또는 찌럭소 광주에서는 뿌락데기 영남이나 강원도에서는 뜬소 황해도에서는 찌릉소라고 한단다. 그러나 아무리 찌러기라도 못당할 임자가 있다. 꼬뚜레를 불끈 움켜쥐고 들어 틀어서 아파할 때 소의 앞다리를 걷어차면 벌렁 나자빠지는데 이렇게 몇차례 하고 나면 두손을 든단다.

 도살장을 탈출한 황소가 난동끝에 사살되었다고 한다. 아무리 도살될 운명이었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나. 언제나 사살로 해결되니 말이다. 결국 속담처럼 「성난소 바위받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