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 골째기로/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작년것만 상기도 남었읍니다/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읍니다.』

 많이 애송되는 서정주 시인의 『선운사 동구』이다. 선운사는 전라도 고창의 이름난 사찰이요 이른봄 절뒷녘의 동백은 선운사 만큼이나 유명하고 서시인의 시비 또한 제목 그대로 동구에서 선한 나그네들을 반기느라 유명하다.

 이렇게 각 고장에 가보면 그 고장을 상징하는 노래비가 있다. 그것은 어느 시인의 문학비일 수도 있고 어린이들이 즐겨 부르던 동요나 어느 시절 흘러간 가요의 노래비일 수도 있다. 이를테면 수원 팔달산 자락의 홍난파의 『고향의 봄』이 목포의 유달산 공원에는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 소풍객들을 반긴다. 그런가 하면 마산에는 노산의 『내고향 남쪽바다』가 38번 국도의 박달재에는 오늘도 『울고 넘는 박달재』의 노래비가 목이 메어 운다.

 그러나 유독 항도 인천에는 노래비가 없다. 말과 계획으로는 풍성해서 이제는 세계적으로 불리우는 『그리운 금강산』 시비를 세운다느니 『이별의 인천항』은 왜색풍이어서 안좋다느니 말만 많을뿐 아직 노래비가 세워진 것은 없다. 사실 『그리운 금강산』만 해도 작사 작곡의 한상억 최영섭씨는 강화에서 낳고 활동기를 인천에서 활약한 향토예술인들이다. 그러므로 해서 그들의 작품이 온 국민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음은 인천의 큰 자랑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쌍고동이 울어대는…』으로 시작하는 『이별의 인천항』은 지금은 거의 가사조차 잊혀져 가지만 50년대 말만 해도 전국적으로 유행했던 대히트곡이다. 노래를 부른 가수 또한 지금은 원로라 할 특유의 경쾌한 가창으로 노래하는 향토인이었다.

 그런데 보도된 바로는 연안부두와 월미도에 곧 노래비가 세워진다고 한다. 즉 월미도 문화의 거리에는 중구청에서 『이별의 인천항』을 대우그룹에서는 옛 여객터미널에 조성될 친수 공원에 『연안부두』 노래비를 세운다는 것이다. 두 노래비가 선뵈는 날 한층 항구의 정취가 돋보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