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마음만 먹는다면 권력은 우리 자신을 열어볼 수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감추고 싶은 것들, 가족들에게조차 함부로 말하기 어려운 것들의 상당 부분을 국가 권력은 스스로의 의지로 파악할 수 있다.
봉건시대의 권력은 손 좀 봐주고 싶은 사람을 상대로 ‘네 죄를 네가 알렷다”에 이어 적당히 치도곤을 내거나 권력을 장악한 측이 상대 당 구성원들의 관직과 신분을 일거에 몰수하는 등으로 권력 자체가 쉽게 드러났다.
그러나 오늘 날의 권력은 대개 겉으로 조용하다.
그저 마음에 안드는 누군가의 주민등록번호와 이름만 있으면 된다.
그러면 행정전산망을 통해 그의 가족과 세대구성 상황은 물론 개인신상정보, 호적 상태까지 알아낸다. 그가 이혼을 했다면 언제 누구와 했는지, 출신상의 적서(嫡庶) 구별과 부모, 조부모 까지의 가계 전체에 대한 파악은 일도 아니다.
국세청 전산망으로는 그의 부동산 보유현황과 매매현황을 알 수 있고 납세실적이 얼마나 되는지, 체납 사례나 혹은 탈세 여부, 그 가능성까지 짐작할 수 있다.
금감위에서는 은행이나 보험사 등 모든 금융기관 거래 현황을 손바닥처럼 들여다 본다. 거래 신용상태와 대출 및 잔고에 이어 신용불량 여부와 횟수, 카드의 사용 내역, 배드뱅크에 신고된 부채 탕감 계획과 현황, 주택청약통장으로 아파트 당첨 여부까지 알 수 있다.
의료보험은 역으로 병력을 확인하는데 요긴하다. 그가 성병에 걸려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지, 현재 무슨 병으로 어떤 병원의 어떤 클리닉에서 주기적인 치료를 받고 있는지 확인이 가능하다. 가족 역시 마찬가지.
그가 방위 출신임에도 마치 특수부대에서 근무했던 것처럼 뻥을 치고 다니는지 국방부는 바로 안다. 만약 그의 가족이나 친지 중 누군가 좌익 경력이 있거나 월북 했다면, 혹은 민주화 운동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면 국가정보원이나 국군 기무사에 그 자료는 녹아있다.
그의 범죄경력조회에는 젊은 시절 치기로 싸움에 휘말려 입건돼 10만원짜리 벌금을 냈던 기록은 물론 아내와 자식에게조차 감추고 싶은 내용이 모조리 경찰전산망과 법무부 기록 속에 남아있다.
통화기록은 언제든지 알 수 있다. 일반전화든 휴대폰이든. 심지어 영장만 있으면 그가 지금 누구와 무슨 내용의 통화를 하고 있는지도 합법적으로 녹취된다.
출입국 조회를 통해 언제 어디로 누구와 외국을 다녀왔는지 파악이 가능하다. 그가 사회적으로 약간의 주목을 받는 위치에 있다면 주요 발언이나 정치적 성향, 교우관계, 주변의 평가 등이 어디엔가 기록으로 남아있다. 공무원이나 공사 직원 등 국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관에서 근무한 사람의 삶의 궤적은 더 말 할 나위도 없다.
그가 죽으면 화장됐는지, 어느 곳에 산소를 썼는지 또한 매장(화장)신고서를 통해 행정전산망에 입력돼 기록으로 남는다.
오늘날의 정치는 바로 이런 국가 권력을 틀어쥐기 위한 모든 행위다.
권력을 갖고자 하는 집단은 백성들의 표를 얻어야 한다.
그게 선거고 투표다.
권력을 쥔 정치집단이 왜 청렴해야 하는지,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지, 권력의 실체와 힘을 들여다보면 답은 자명하다.
권력이야 이런 정도 말고도 더 엄청난 것들을 쥐고 있지만 보통의 평범한 우리네 시민들도 ‘코뚜레에 꿰인 소처럼’ 각양각색으로 권력에 연결돼 있다.
정치가 아무리 싫어도 권력은 우리네 백성에게 이렇게 고약한 모습으로 오만데마다 척 들러 붙어있다. 우리가 아무리 정치로부터 도망가려 해도 권력 역시 우리 없인 재미 없으니 고단한 세상살이의 또 다른 아이러니다.
하여 어쩔 도리없이 투표에 나서는거다.
다만 섣부른 격정이나 흥분은 오히려 극단적 광기(狂氣)의 정치판을 부를 뿐이다.
우리네 삶에 환희는 그만두고, 최소한 질곡으로 끌고 들어가지는 않는 그런 리더십을 골라야 할텐데, 솔직히 그게 너무 어렵다. <권혁철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