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작품엔 해학이 있다

환범 교수(李桓範ㆍ50)가 인천 인하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작품활동을 시작한 것이 1983년이니까 그가 인천에 정착한 지도 어언 17년 째다. 30초반에 인천에 뿌리내려 50에 이르렀으니 말하자면 그는 인천에서 뜻을 세우고(立志) 어느덧 천명을 헤아리는(知天命) 나이에 이르른 것이다. 인생에서 축적된 에너지를 가장 왕성하게 발산시키는 시기를 인천에서 보낸 그이지만 그는 늘 조용한 은둔자적 자세로 교육자이자 작가로서의 길을 병행해 왔다.

 이환범의 이러한 양동양식의 이면에는 작가로서의 아집과 섣불리 생각하고 행동에 옮기는 현대인의 경망스러움에 대한 냉소가 잠재해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이환범을 잠시라도 가까이에서 본 사람들은 그가 불의(不義)라고 생각한 것에 대하여 행하는 가차없는 공격과 후배나 제자들을 이끄는 리더십을 이야기하곤 한다. 즉 그는 비판해야 할 것에 대하여 모른체 한다든가 흔히 교수작가들에게서 볼 수 있는 주변과 사회에 대한 「고귀한 무관심」의 태도를 보이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정중동(靜中動)의 행동양식을 보이는 전형적인 외유내강(外柔內剛)형이라고나 할까.

 이런 그의 성향은 그의 작품세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무런 배경없이 한 무리의 괴석과 여기에 기생하는 풍란 또는 이름모를 넝쿨 식물, 그리고 구도를 고려하여 전면에 등장시킨 난분(蘭盆) 등, 이 모든 것이 분방한 선과 몰골적 표현의도에 의한 감필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굳이 정신적 원류를 따진다면 북송대 문호이자 선비화가인 소동파(蘇軾)의 화의(畵意)를 들 수 있겠으나 시대의 흐름에 따른 형식미의 차이는 당연한 귀결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가 주변과 현실에 갖는 관심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의 인물화를 들 수 있다. 분방하고 자신감에 찬 선묘와 여기에 발묵(潑墨) 또는 파묵(破墨), 즉 서로 이질적인 표현기법을 적절히 구사하여 그려낸 그의 인물군상은 마치 한 이야기(逸話)의 삽화를 보는 것 같이 친근한 형상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최병국(인천 미협 부 지회장)은 그의 인물화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명한다.

 『현실 속의 부정을 폭로하고 드러내 현실의 추악함과 인간 운명의 절망만을 드러내 보여주기보다는 주변에 애정을 갖고 현실을 긍정하며 그 속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 나가는 이환범의 예술관이 전체 작품에 흐르고 있다. 이 작품들은 우리 시대의 기록화이며 다음 세대에 우리문화를 전해주는 메시지 역할도 하고 있다.』

 여기에 이환범은 원근법을 무시하고 그림을 그렸다고는 하나 그가 인물들에게 부여한 위치의 적절성에 의해 자연스럽게 조장된 공간감으로 인하여 전혀 어색한 구석을 찾아 볼 수 없다.하자면 그는 의도적으로 투시도법은 무시했지만 적절한 공간 설정법에 의하여 대상을 범주하고 보다 넓고 가능성있는 공간을 창조한다. 이는 그가 언급한 바 있는 「시점의 이동」과 연관되는 점이라 생각되며 북송대 화가 곽희가 그의 「임천고치(林泉高致)」에서 말한 바 있는 다시점의 원리와도 일맥상통한다고 하겠다. 즉 그는 근대회화의 한계로 지적되고 있는 카메라 옵스큐라의 원리에 의한 기계적 공간개념에서 일탈하여 시각적 경험과 「그리기」 라는 자유로움을 최대한 살려 그의 표현대로 기계적이고 비인간적이며 비정상적인데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고도의 숙련된 테크닉에 의해 완결된 것이건, 거대한 자연의 풍광을 부감한 것이건, 선비화가와 같은 편한 마음으로 붓을 희롱한 것이건 간에 사람이 그렸다는 맛을 진하게 풍겨준다. 이 점이 도시문명 속에서 각박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그의 그림 속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적 수단이자, 기계적 사고와 어설픈 조형원리에 경도되어 있는 젊은 후배들에게 전하는 암묵적 메시지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근대 인상주의나 입체파 화가들이 보여주었던 어설픈 과학주의로 현대 회화에서 보여주는 맹목적 인문주의도 아닌 그만의 표현언어이다. 더 나아가 이는 자기 분야에 대한 심화된 전문성에 의하여 정작 사고하고 비판하는 기본적 소양도 갖추지 못하여 어설픈 선문답(禪問答)에 쉽게 경도되는 「신 지식인」의 이율배반적인 행태에 대한 인문학적 경구인 것이다. 러한 정신은 그가 개인전 도록에서 밝힌 짧은 수상에서 잘 나타난다.

 『현대문명사회의 지진아(遲進兒)인 탓일까. 잠시라도 땅의 기운을 쐬지 못하면 맥을 못춘다. 가속적으로 황폐화되어가는 도시 환경 속에서 오늘도 「카메라 출동」을 보며 남몰래 체읍(涕泣)한다. 점차 피폐(疲弊)되기로는 농촌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럴수록 자연 속의 풀한포기가 새롭고 반드시 보존해야 할 인간으로서의 책임을 느낀다. 적어도 자기주변을 오손시키지 않겠다는 국민 각자의 의식과 결의는 정녕 불가능한 것일까?(중략)

 그러자면 다소 설명적 표현이 되기도 할 것이다. 또 가능 자연만의 모습보다 그 자연을 향유(享有)하는 인간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 거기에 더 욕심을 내어 웃음과 익살이 곁들여 진다면…. 웃음과 해학은 정해진 규율을 벗어난 파격(破格)에서 나오게 마련이다. 그러자면 눈에 보이는 정직한 시각보다는 동양화 고유의 시방식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평면성(平面性)ㆍ부감(俯瞰)ㆍ원근법무시(遠近法無視)ㆍ시점(視點)이동 등의 방법이겠다.』

〈이경모ㆍ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