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숙일/엄마는 외계인(?)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면서 안타까운 일이 종종 있다. 미국의 어느 교수는 우리의 초등학교 교과서를 분석한 후 이러한 성차별교육은 범죄라고까지 말했다고 하지만 그러한 것을 차치하고라도 우리의 치우친 무게중심의 교육은 생활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여자고등학교 2학년 성교육시간에 자신의 엄마에 대한 정의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라고 하였다. 다들 의아한 표정으로 「엄마는 식구들을 위해 애쓰신다」 「내 인생에서 엄마를 빠뜨릴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엄마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까」 「엄마는 나를 자신이 원하는 인간으로 만들려고 끊임없이 잔소리를 한다」 「엄마는 집안청소와 식구들의 건강을 지키는 파수꾼이다」 등등의 말을 쏟아 놓았다.

 이러한 말들 안에 어느 곳에도 엄마를 여성의 성으로, 한 개인으로 인정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위에서 나온 역할들은 누구나(여성이든 남성이든) 상황에 처하면 할 수 있는 것이다. 엄마라는 한 개인의 여성은 없어져버렸다. 이 학생들에게 결혼을 선택한 후 그 순간부터 자신을 포기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다들 아니라고 하였다. 학습되어지는 삶은 반복된다는 것과 내가 인정받고 싶으면 상대를 인정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시대가 변하면서 많은 부분들이 바뀌어가고 있는듯 보이지만 또 사실 많은 부분들이 고착되어 그대로 굴러가는 것들이 있다.

 그 중에 여전히 딱딱히 눌러앉은 「여자-남자」에 대한 고정관념적인 교육들은 여학생, 남학생을 하나의 역할에 부쳐 벌써부터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옷을 입히는 것이다. 만약 교사나 부모가 「여자는 결혼 잘해서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나, 「남자는 경제적으로 집안을 책임져야 한다」는 식의 생각을 가졌다면 학생들을 바라볼때 그것이 전달될 것이고, 그 교육은 반쪽교육이 되는 것이다. 행동을 촉발시키는 동기가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잘못된 성역할과 성 인식에 대한 작업들 후에 엄마도 여성이라는것을 스스로 인정 할 수 있게 된 학생들은 「엄마에게 너무 미안하다」 「죄송하다」 「엄마도 여성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엄마를 여성으로서 깊이 있게 생각해 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서 좋았다」 「부끄럽다」 등으로 느낌을 표현했다. 우리교육이 개인 하나하나를 소중히 보고 그에 맞게 인정하는 일이 외적인 교육의 틀을 바꿔가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