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신부전증으로 직장을 그만둔 박종해(46·부산 수영구 광안동)씨. 박씨는 업무상 산업재해로 인정받기 위해 5년에 걸친 ‘나홀로 소송’을 벌인 끝에 결국 지난달 말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냈다.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이 내려져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박씨는 지난 1999년 4월 중순 갑자기 직장에서 쓰러져 ‘다낭신종에 의한 만성신부전증’ 판정을 받고 그야말로 ‘절망의 세월’을 보냈다는 것이다. 5년 동안 전기설비 생산업체 간부로 일하면서 잦은 출장과 술자리에 찌든 결과였다.
‘진짜 싸움’은 8개월간 입원 치료를 받고 퇴원한 후부터 시작됐다. 업무상 산재로 인정받으려고 지난 2000년 5월 처음으로 근로복지공단에 신청했으나 ‘유전에 의한 질병이어서 산재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재심사를 위해 제출한 추가 서류들이 산재가 불가능한 근거로 둔갑해 되돌아왔을 때 절망감마저 느꼈습니다.”
박씨는 좌절하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산업재해 관련 사이트를 뒤지며 정보를 찾아냈고 법률적인 문제는 한국법률구조공단 부산지부의 도움을 받으며 본격적인 소송에 나섰다.
그는 3천여건의 서류를 직접 준비해야 했고 인터넷과 노동단체, 법원 등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찾아다녔다. 우여곡절 끝에 두 번의 재판에서 ‘연일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가 질병을 악화시켰다’는 점을 인정받아 승소했고 결국 지난달 말에는 대법원에서도 승소하게 됐다.
박씨의 경우처럼 근로자들이 업무로 인해 사고를 당하거나 질병을 얻었을 경우에 국가로부터 사회보장 혜택을 받기 위해 근로자 스스로 ‘업무상 재해’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심한 고통을 받고 있다.
3일 ㈔한국산재노동자협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산재를 인정받으려고 근로복지공단에 행정심판을 요청하는 근로자는 연간 4천여명에 달하고 이 가운데 80%가량은 박씨처럼 변호사에게 의뢰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소송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로 인정받는 경우에도 최소한 1년가량이 걸리고 법원까지 가면 3~4년이나 소요돼 몸과 마음이 모두 피폐해지게 된다.
근로복지공단이 산업재해를 인정 받으려는 근로자들에게 도움을 주기보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무조건 대법원까지 재판을 끌고 가는 점도 시급히 개선할 구조적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최근 법원도 상식적인 인과성만 있으면 산재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는 추세지만 근로복지공단 측은 근로자들에게 업무와 질병의 인과 관계를 증명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박씨는 “평소 산재를 당할 거라고 여기는 직장인들은 거의 없지만 당사자가 될 경우에 겪는 고통은 엄청나다”며 “국가가 적극적인 사회보장을 통해 열심히 일하다 부상하거나 질병을 얻은 직장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부산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