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전인 2000년 3월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열렸던 ‘인천항 관세자유지역 지정을 위한 정책토론회’. 항만과 관련해 아마도 인천시가 주도적으로 나서 처음 치러낸 행사인 듯싶다.
부산이나 평택 등 다른 도시들이 적극적인 항만정책을 펴고 있던데 반해 당시 거의 무관심이라 표현해도 좋을만큼 항만에 대해 고개를 돌려왔던 인천시의 태도에 무척이나 아쉬움을 느껴온 기자에게는 상당히 ‘감격스러운’ 자리였다.
때문인지 지정토론시간으로 주어진 7분동안 기자는 이 같은 소회와 함께 시를 나무라는, 주제와는 다소 동떨어진 질타성 발언을 했다가 사회자로부터 지적(?)을 받기도 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요즘 인천항 항만자치공사제(PA:Port of Authority)의 조기도입을 요구하는 시의 목소리가 높다. 이런 저런 이유로 ‘시기상조’를 주장하며 미온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중앙정부와 마치 ‘이번만큼은 물러설 수 없다’는 사생결단이라도 낼듯한 자세다.
인천항만공사가 출범할 경우 첫 해부터 흑자를 낼 수 있다는 산업연구원의 재정수지분석 용역결과<본보 2월 10, 11, 12, 13일자 기획보도>도 물론 희소식이지만 이 같은 시의 자신있고 힘있는 모습이 우리로서는 더욱 반갑다.
지난 9일 용역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홍준호 시 항만공항물류국장은 이런 말을 했다.
“중국이나 국내 다른 항과의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투자와 시설확충이 시급하나 중앙정부가 운영하는 현 체제아래에서는 어렵다. 하루 빨리 PA를 도입, 선사와 화주 등 이용자 중심으로 운영체계를 개편, 외자유치 등을 통해 개발하는 것만이 살길이다.”
현재 인천항이 처한 상황과 미래 비전을 위해 가야 할 대안으로서 PA를 보는 시의 인식을 명쾌하게 담아낸 언급이다.
그 동안 각 언론을 통해 숱하게 거론됐지만 PA의 개념을 다시 정리해보자. 정부재산인 항만시설을 출자받아 항만을 독립채산제의 책임경영형태로 관리하는 반(半)공공-반민간조직이 바로 PA다. 민간기업경영방식을 도입, 영리성과 효율성을 앞세워 항만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취지다.
정부와 지방추천 인사들로 구성된 항만위원회가 최고 의사결정권을 가지며 수익자부담원칙에 따른 독립채산제와 기업경영원칙에 의한 회계방식이 채택된다.
때문에 독립채산제 운영이 가능한 ‘재정상태’가 무엇보다 중요한 선결요건이자 지켜야할 원칙으로 꼽힌다. 1922년 항만공사를 설립하면서 ‘공사에 예산을 지원해도 안되고 지원받아도 안된다’고 합의한 뒤 시행에 들어간 미국 뉴욕·뉴저지항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지원이 철저히 배제된 상태에서 자체 재정만으로 운영돼야 하는 것이다.
현재 뉴욕·뉴저지항을 비롯해 프랑스 르아브르항(인천항과 자매결연), 싱가포르항이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1999년 국무회의가 부산, 인천항에 2001년 공사제를 도입토록 권고한이후 우여곡절끝에 올 1월부터 부산항에서 시행 중이다. 부두임대료와 접안료, 화물입출항료만 공사 수입원이고 선박입출항료·수역점용료·정박료는 국고로 들어가는 등 법적으로 아직까지는 ‘반쪽짜리’지만 그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는 상업을 지배하고, 상업을 지배하는 자는 세계를 지배한다”는 16세기 영국 엘리자베스여왕 시대 월터 롤리경의 말처럼 항만물동량 유치에 각 나라들마다 국운을 걸고 있는 요즘이다. 가까운 중국의 상하이와 선전, 칭다오, 닝보, 톈진, 다롄항이 우리의 강력한 경쟁상대로 급부상하고 있다. 항만도 이제 이용자들에게 질높고 신속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앉아서 기다리지 말고 국내외 여기 저기를 돌아다니며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쳐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인천PA의 연내 도입을 요구하며 실로 오랜만에 정부를 향해 칼을 힘차게 빼든 시의 손에 우리 모두가 힘을 실어줘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이인수·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