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가 바쁘다. 청사 내의 하루 일상은 너무나 바쁘고 숨 가쁘다. 격무부서를 선정하니 어쩌니 하지만 위아래 없이 모두가 바쁘고 누구나 시간에 쫓긴다. 도지사는 대권에 마음이 바쁘고, 며칠 사이에 전직이 된 정무부지사는 총선 때문에 바빴다. 국회의원이건 도지사건 또 아니면 시장이건 선출직 공직자들의 경우 당선되는 순간부터 다음 선거준비에 들어간다는 말은 과히 틀리지 않아 보인다. 행정이 본래 시간에 민첩할 수밖에 없다지만 수장이 바쁜 행정은 온통 바쁠 수밖에. 오늘날의 행정은 가히 속도전을 방불케 한다. 속도전은 성과에 대한 집착으로 귀결되고, 성과에 대한 집착은 조급증을 부른다. 조급증은 결국 무분별한 정책 남발로 이어진다. 최근 경기도에서는 며칠 사이에 전직이 된 정무부지사를 두고 ‘정책남발로 시작해서 정책만 남발하다 퇴직했다’는 우스개가 유행한다. 경기도 6개축 개발방안이던가, 그는 취임과 거의 동시에 실무부서 직원들도 모르는 정책발표로 매스컴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퇴임을 불과 며칠 앞두고는 서울공대 연구소의 이전이라는 타진단계의 정책을 마치 확정이라도 된양 발표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모두들 이렇게 바삐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이렇듯 바쁘게 경기도가 가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인가? 이른바 ‘동북아의 중심’이다. 동북아의 중심구상은 세계가 동일무대에서 각축하는 소위 무한경쟁시대에 일정한 고지를 선점하고자 하는 전략적 목표로 우선 이해된다. 중국과 마주하는 지정학적 고려와 국가의 경쟁력을 선도한다는 경기도 나름대로의 자부심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그런데 왜 동북아의 중심은 이렇듯 공허한 구호로만 나부끼고 있는가? 때로는 공허하고, 때로는 경박하다. 필시 일상에서 보여주는 도의 모습과 동북아의 중심 사이가 너무 멀기 때문은 아닌가? 구호 따로 행정 따로 아닌가 하는 말이다.
백보를 양보해서 경기도의 긍정적인 가치와 성과들에 눈 돌려보자. 교육과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막대한 투자,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및 과학기술에 대한 지대한 관심, 오늘의 과감한 투자는 필시 도의 성장잠재력을 키워줄 것임에 틀림없다. 어떤 투자는 머지않아 가시적인 성과를 드러낼 것이고 또 어떤 투자는 먼 날을 두고 성과를 드러낼 것이다. 기대 이상의 성과가 있다고 치자. 그때는 우리가 동북아의 중심이 될 수 있을까? 대답은 ‘NO’라고 할 수밖에 없다. 지나치게 단순한 비유지만 그렇다면 왜 일본은 세계 최대의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지도국으로 인정받지 못하는가.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지도력을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경기도가 서 있는 위치를 그대로 하고 200년 전으로 눈을 돌려보자. 도 청사를 고스란히 감싸고 있는 화성복원 사업이 한창이다. 듣기로는 화성 4대문 안의 모습을 옛날로 돌린다고 한다. 애석하게도 지방자치단체들이 화성을 단순히 문화재로만 인식하거나 효의 상징으로만 해석하는 경향이 있지만 화성에 담긴 꿈과 정신적 가치들을 제대로 복원할 수만 있다면 오늘날 경기도가 어디로 가야할지 자명하게 보여줄 수 있다고 믿는다.
당시 학문과 지식, 기술의 개방적인 탐구가 장려되고, 실용적이고 개혁적인 사고와 정책이 온 나라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던 시기에 그 결정체로 작품화 된 것이 화성이었다. 왕이 거처할 행궁과 이를 보좌할 싱크탱크들이 모이는 연구공간 등 제2의 행정신도시로 손색이 없다. 그 일대엔 전국적 규모의 시장과 상점을 개설해 수도권의 유통중심 기능을 강화했다. 실용적 사고와 미학적 사고가 결합해 뛰어난 도시공간을 창출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당시 금기시되던 북학에 대한 개방적 자세를 유지함으로써 근대화와 세계화를 주체적으로 전개하려 했던 정조의 원대한 비전을 화성은 그 밑그림으로 간직하고 있다. 혹여 동북아의 중심구상이 깊이 있는 철학적 기반을 요구한다면, 그래서 고질적인 조급증을 치료할 수 있다면, 멀리 갈 것 없이 화성을 모태로 하면 어떨까.
아무래도 경기도가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자세는 ‘더 빨리 더 많이’는 아닌 것 같다. 정치적 비중 때문에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고 주목받는 도지사에게나 경기도에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더 깊이’가 아닐까 싶다. 무릇 개인이건 집단이건 생각이 깊고 위대해야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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