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에서 상업적으로 컨테이너 수송방식이 본격 이용되기 시작한 것은 미국 씨랜드(Sea Land)사의 컨테이너선이 부산항에 첫 입항한 1970년부터였다. 컨테이너는 앞서 1969년 미국 US Line이 미군화물을 수송하면서 처음 도입됐다.
세계적으로는 씨랜드사가 1957년 미국 휴스턴과 뉴욕항사이 연안수송에 투입한 ‘게이트웨이 시티’호가 상업목적의 첫 컨테이너선이었으며, 이어 1966년 뉴욕∼유럽간 대서양항로에 풀컨테이너선 ‘페어랜드’호가 운항하면서 국제 해상에도 컨테이너 수송시대의 막이 올랐다.
컨테이너가 물류에 가져온 가장 큰 공로는 복합운송-한 나라의 어느 장소에서 다른 나라의 특정 장소까지 도로, 철도, 수운, 항공, 해상 등 적어도 2개 이상의 상이한 운송방법에 의해 수행되는 화물의 운송-을 탄생시켰다는 점이다.
흔히 해운업은 컨테이너와 벌크, 유조 등 3분야로 대분된다. 그러나 현대 해양물류의 꽃은 단연 컨테이너다. 한 국가 해운산업력의 척도를 나타내는 기준이며 나라간은 물론 국적에 상관없이 항만간 컨테이너물량 유치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점이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첨단 통신, 항공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물자운송은 ‘배’가 으뜸이라는 점을 감안할때 이 같은 추세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컨테이너가 ‘해운의 총아’로 자리잡으면서 홍콩의 HPH, 싱가포르 PSA, 호주 P&O 포츠, 미국 SSA, 필리핀 ICTISI, 네델란드 ECT 등 컨테이너터미널 전문 운영업체들이 신흥 항만재벌로 부각, 세계 곳곳에서 해운물류계를 주름잡고 있다.
인천항도 올해 오랜 숙원이던 외항(外港)시대를 맞는다. 외항은 곧 컨테이너와 직결되는 개념이며 갑문을 드나드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통상 부두에 닿은 뒤 짧으면 4시간, 길어야 24시간이면 다시 닻을 올린다’는 컨테이너선의 시계추같은 운항일정으로 미루어 갑문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는 외항의 중요성-특히 인천항-은 새삼 재론의 여지가 없다.
토착기업인 영진공사의 남항 1만t급 부두가 4월15일 선보이는데 이어 싱가포르 PSA-삼성의 인천남항컨테이너터미널(ICT·4만t급), 선광 남항부두(1만8천t급)가 10월 잇따라 개장된다. 모두 컨테이너 전용 부두다.
앞서 지난 98년 개장한 대한통운의 5천t급 2선석을 합쳐 이들 5개 부두의 운영이 본격화되면 연간 줄잡아 50만TEU의 컨테이너물량이 신규 창출돼 인천항도 올해 100만TEU시대를 맞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인천항이 동북아 물류중심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단단한 초석이 놓여지게 되는 셈이다.
‘돈’문제로 10여년간을 질질 끌어오던 북항개발도 지난해 전체 18개 선석 중 11개의 착공이 이뤄지면서 본격화됐다. 잡화 3개, 자동차 2개 선석의 공사는 올해 첫 삽을 뜬다.
2006년 철재부두 개장을 시작으로 오는 2011년 대부분의 개발사업이 마무리될 예정이다.
또 현재 예비타당성 조사가 진행 중인 송도신항(인천 남외항) 개발사업도 오는 6월 이후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인천항은 이제 개항(1883년), 제1선거(1918년) 및 제2선거(1974년) 준공에 이어 제3의 혁명기를 맞는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들뜬 분위기속에 혁명의 맹아(萌芽)는 자칫 그 상태로 스러지기 쉽다. 아무리 훌륭한 시설이라도 텅 빈채 방치된다면 아예 만들지 않으니만 못한 것 아닌가?
막 피어오른 싹을 잘 보듬어 만개시키는 것은 바로 지역 정치권과 관료를 중심으로 한 우리 시민 모두의 몫이다.
2002년 컨테이너처리실적에서 세계 4·6위를 기록했던 중국 상하이와 선전항이 지난해에는 부산항을 두 계단이나(3위→5위) 끌어내리고 각각 3·4위로 치고 올라오는 등 물량유치를 위한 경쟁이 가히 ‘무서울만큼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펼쳐지고 있는 요즘이다.<이인수·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