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주최하는 ‘페어웰파티’(송별회)’다, 이벤트 전문업체의 ‘테마파티’다, 혹은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는 ‘베이비샤워’다 해서 파티만 쫓아다니는 ‘파티홀릭’(Party-holic)이 고학력, 전문직 종사자들 사이에 늘어나고 있다는 보도다. ‘파티홀릭’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두차례 송년회를 치르면서 나름대로 복잡한 심경에 복받쳐, 급기야 기억의 필름이 끊겨나간 낭패를 이자 저자가 당했을 성 싶은 세밑이다.
 지난 밤 평소 가까이 지내던 인천의 문화예술인들과 갖은 흥건한 술자리에서 알콜의 상승작용에 편승해 어느대목에서는 열변을, 어느대목에선 날선 비난을, 또는 발전적인 비판을 섞었다. 문득 이 아침 조급증이 발동, 이러저러한 애씀으로 숙취를 씻어낸 후 비로소 맑은 정신으로 2003년 인천 문화를 뒤돌아본다.
 총평격 단어를 골라낸다면 ‘혼돈과 미완’, 그리하여 낳은 느낌이 슬픔이다. ‘인천문화재단’이 나를 슬프게 한다.
 한해 내내 표류돼오던 문화재단 설립을 놓고 인천시는 이달초 ‘설립추진위원회’ 1차회의를 소집, 바야흐로 로드맵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해서, 내놓은 것이 내년 4∼6월 출범을 목표로 시와 문화재단의 업무범위를 골자로 한 기본계획 수립안이다. 그러나 내용인 즉은, 그동안 문화예술인들이 누차 한목소리로 개선의 필요성을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회계의 1%출연 의무화 규정을 삭제하고 조직 안정화 시기까지 공무원을 파견한다’는 원칙과 ‘소규모 재단으로 우선 발을 디딘후 기금 규모에 따라 추진한다’는 방향에서는 ‘한치의 변함없음’ 그대로였다. 결국 이날 회의는 “사안별 대폭적인 개선안을 다시 만들어내라”는 의원들의 빗발치는 요구속에서 성과물없이 끝났다는 후문이다.
 올 초를 돌이켜본다. 어찌어찌됐건 인천시장은 연내 문화재단을 출범시키겠다고 강한 의지를 표명함으로써 문화인들을 설레이게 만들었다. 그러나 시는 재정상황 악화와 금리 인하에 따른 사업비 감소 등을 이유로 99년부터 착실히 출연해왔던 일반회계의 1% 예산을 삭감하겠다는 조례 개정안을 내놓았다.
 이에 지역내 예술단체의 두 축인 예총과 민예총이 연대, 문화재단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공동 심포지엄을 개최했고, 이날이후 시는 토의 내용을 적극 수용해 새로운 안을 짜겠다고 공표함으로써 사업이 탄력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그후 몇개월 공을 들여(?) 작성한 안이 이달초 발표된 계획안이다. 이쯤되면, 탄식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두번째로 ‘문예진흥기금’이 나를 슬프게 한다. 11월말이면 으레 연중행사처럼 도마위에 오르던 문예진흥기금 지원방식이 올해도 어김없이 예술인들 사이에서 태풍의 핵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지난해나 그 전년도나 누누이 지적돼왔던 문제점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골고루 나눠주기 식의 소액다건주의 지원이라든가, 활동연차를 적용해 가산점을 부여하는 점수배분, 철저한 심사위원 비공개 원칙에 이르기까지.
 올해 특별히 비감을 느끼는 이유가 있다. 문화 활성화를 내건 다양한 논의가 많았던 2003년, 그중 관심을 모았던 토론회가 지난여름 인천예총과 인천의제 21이 마련한 문예진흥기금의 발전방향 심포지엄이다. 이날 현장에서 나를 붙들어 맨 기억 하나는 시 주무부서 관계자가 토론회 말미에서 ‘금년에는 반드시 지원방식의 틀을 바꾸겠다’는 공약(公約)을 날린 사실이다.
 수개월이 지난 지금 그것은 공약(空約)임이 입증됐다. 문진기금 지원방식은 또 그타령으로 해를 넘기게 된 셈이다.
 다음으로 축제가 나를 슬프게 한다. 인천대표축제를 하나 만들어내겠다는 시의 강박에 가까운 의지는 한해내내 ‘흥부네 집처럼’ 줄줄이 축제를 출산했고 구·군 등 기초단체들도 이에 질세라 널뛰기를 해댔다.
 그럼에도 축제에 대한 변함없는 철학과 접근방식으로 이벤트성 행사 수준을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시민들의 일상으로 파고드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도깨비 방망이 치듯이 뚝딱 하고 만들기에만 열중하는 문화행정인들의 백치에 가까운 무지가 한없이 나를 비통하게 만든다.
 이쪽으로 보나 저쪽으로 보나 온통 나를 슬프게 하는 2003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