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몽블랑 골짜기에 신혼여행을 온 젊은 부부가 있었다. 그런데 그만 신랑이 빙하의 가파른 얼음위에서 미끄러져 깊은 크레바스 틈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남편을 잊지 못하는 신부는 빙하 하류에 집을 짓고 살면서 신랑의 시신이 떠밀려 오기를 고대하게 되었다. 어느새 예뻤던 얼굴에는 주름이 생기고 머리는 희어 할머니로 변했다. 그러던 어느날 녹아 흘러내리는 얼음물에 신랑의 시신이 나타났다. 자신은 늙어 할미가 되었으나 신랑은 젊디 젊은 예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오랜 세월을 얼음속에 갇혀있느라 부패하지 않았다. 아주 느릿느릿 육안으로는 관측되지 않을 만큼 느리게 흐르는 빙하의 속도를 계산해준 학자에 따라 신부는 그만큼 오랜 세월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중학교 시절 빙하를 배우면서 지리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이야기는 지금도 이곳 프랑의 알프스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전설로 전해진다고 한다. 산골 사람들의 순진한 심성과 몽블랑이 끼쳐주는 젊은 기운을 잘 상징해 준다고 할만하다.

 몽블랑은 알프스의 최고봉으로 해발 4천8백7m-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경계에 있다. 18세기 중엽부터 등산인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 1786년 처음으로 인간에게 정복되었다. 지금은 케이블카로 관광객들이 오르내리며 1962년 프랑스의 샤모니와 이탈리아의 쿠르마이외를 잇는 몽블랑 터널이 개통되었다. 이곳 알프스에는 이외에도 수개의 고개에 터널이 뚫려 국가간에 자유로운 통행이 가능하다. 5천8백80m의 생 베르나르를 비롯 심플론(1만9천8백23m) 생고타르(1만4천9백98m) 등이다. 이들 지점에는 예부터 큰 고개들이 있던 곳인데 조난객들을 수도원의 개들이 구조했다.

 그런데 몽블랑 터널에서 트럭에 화재가 발생 30여명이 희생되는 참사가 있었다고 외신이 전한다. 알프스의 터널에 비하면 우리의 것들은 장난감 정도이기는 해도 대안의 불로 삼아야 한다. 지금 공사중인지 소식이 감감하지만 인천에 등장할 몇개의 터널도 안전과 구조에 완벽한 터널이 되도록 설계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