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당시의 사진 몇장이 눈길을 끈다. 무너질듯 퇴락한 개와집에 걸린 전당포의 간판이 특히 옛 사정을 사실적으로 전달해 준다. 추녀밑의 한문간판 말고도 커튼처럼 한자와 한글 토를 달아 쓴 천도 걸고 있다. 한자는 그대로 典當鋪이나 한글로는 당시의 표기 「뎐당포」이다. 아마도 우리나라 간판사의 효시가 아닐지 모르겠다.

 이왕에 전당포 간판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환상적인 중국문화」란 책자에도 중국의 옛 전당포 간판 그림이 실려있어 흥미롭다. 홈이 패인 돌에 꽂은 기둥에다 여인들의 노리개 모양의 장식이 걸린 용의 머리를 매달고 있다. 옛날 중국의 간판들은 대개 그런 식이었다. 돌에 꽂은 깃발에 상품의 모양을 그려 걸든지 처마나 벽에 굵은 글씨로 써서 걸었다. 이런 간판을 보았던지 정조실록에는 중국에 다녀온 한 신하의 보고에도 간판 이야기가 나온다. 책의 저자 윌리암스는 중국의 간판이 서구 도시에 비해 갑절은 요란했다고 끝을 맺는다.

 그러고 보면 간판문화는 원래 동양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다. 서구 도시의 어느 번화가를 둘러 보아도 점포의 간판이 없는듯하고 있어도 요란하지가 않다. 겨우 동물들의 조각상을 내걸어 전문업종을 표시하는 정도이다. 이에 비해 동양의 한자권 도시들은 간판이 요란하다. 중국이나 일본 우리나라의 거리들이 그렇다. 서구에 비해 사뭇 공격적이요 일종의 강요형이다. 도쿄의 번화가 긴자의 경우 인산인해 만큼이나 간판들이 즐비 빌딩들이 가리는 모양새이다.

 지금 우리도 비슷하다. 간판 두어개씩 아니 걸린 상점이 없을 정도이고 그것도 부족해서 유리창마다 덕지덕지 글씨를 써서 바르고 고객서비스니 가격파괴니 따위의 현수막까지 내건다. 특히 종합상가 빌딩은 현기증으로 바라보기도 힘들 정도이다. 행정당국이 기회있을 때마다 정비를 강조하나 그때뿐이다.

 인천시가 잘못 부과한 돌출간판에 도로점용료를 추징하리라 해서 시끄럽겠다는 보도이다. 누가 「벌나비를 유혹하는 꽃잎처럼 간판이 도시의 꽃」이라고 했는지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