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몽고 초원서 타클라마칸 사막까지
내몽고 초원서 타클라마칸 사막까지
  • 승인 2003.11.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청색의 성 후허하오터
 서역열차기행-내몽고 초원서 타클라마칸사막까지
 
 끝없는 모래와 바람의 길 서역(西域).
 북경역을 출발해 후허하오터-란저우-둔황-투루판-우루무치까지 3천700km를 열차로 여행한다는 건 시작부터 그 기나긴 여정만큼이나 긴장되고 설레는 일이었다.
 밤낮으로 열차의 차창을 흔들어 대던 바람은 어느새 광막한 초원을 가로질러 작은 모래언덕들을 일군다. 광활한 대륙, 그리고 그 땅에 터잡고 살고있는 다양한 인종의 중국인들은 우리가 그동안 잊고 지냈던 여러가지 감각들을 일깨워 줬다.
 한반도의 과거가 고스란히 살아 숨쉬는 내몽고의 초원을 무대로 척박한 자연환경을 슬기롭게 활용하며 살아가는 몽고족. 그리고 서구적인 외모와 생활풍습, 언어까지 중원의 한족과는 확연히 구별 되는 서부대개발의 가장 변두리에 서 있는 위구르 등의 소수민족들까지.
 중국의 여러 민족들과 어울리며 열차로 따라나선 내몽고 초원에서 실크로드 톈산북로에 이르는 도시들을 차례로 소개해 본다.
 
 1. 청색의 성 ‘후허하오터’(呼和浩特)
 2. 잠들지 않는 서역 관문 ‘둔황’(敦煌)
 3. 비옥한 위구르의 땅 ‘투루판’(吐魯番)
 4. 서부대개발의 종착역 ‘우루무치’(烏魯木齊)
   
 1. 청색의 성 ‘후허하오터’(呼和浩特)
 베이징(北京)역에서 밤기차를 타고 12시간을 달려 도착한 ‘후허하오터’(呼和浩特)는 중국 최초의 자치구인 네이멍구(內蒙古)의 성도(省都).
 16세기 중반 시가를 둘러싼 성벽을 개축할 당시 청색의 벽돌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몽골어로 ‘청색의 성’이라는 뜻의 이름을 얻게 된 곳이다.
 이른아침 배낭을 맨 채로 기차역을 나서자 대합실 입구부터 제복차림으로 ‘초원투어’ 상품을 파는 젊은 여인들의 번잡스런 호객행위가 변화를 실감케 한다.
 이 곳은 사회주의화 이후 모직공업을 비롯해 제당, 피혁, 유가공 등을 통해 급속한 발전을 이뤄낸 도시.
 그나마 베이징에서 열차로도 하룻밤이면 도착 할 수 있는 곳이라선지 호황을 누리지는 못하지만 베이징과 연계한 관광상품들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특히 지난 1997년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 출범 50주년을 맞아 12억위안을 들여 후허하오터와 바오터우(包頭)를 잇는 고속도로를 완공하면서 변두리 지역을 포함해 30여개 민족 200만명이 거센 변화의 물결을 실감하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도심을 벗어나 미니버스를 타고 수십킬로를 달려야 겨우 집몇채가 나타나는 광활한 초원을 향해 이동을 한다.
 가끔씩 오토바이를 탄 몽고족의 청년이 몰고가는 양떼들과 듬성듬성 보이는 관광객용 ‘빠오(包)’ 들이 눈길을 잡다가 산 정상마다 돌무덤 처럼 쌓아올린 제단들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허물고 하늘과 땅만이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초원문화를 이룩한 몽고족들은 풀들의 싹이 돋기 시작하는 음력 5월 13일이면 아오바오산(敖包山)으로 불리는 이곳에서 기우제를 겸한 제사를 지내고 활쏘기와 말타기 등을 즐기며 남녀노소간의 좋은 감정들을 키워간다. 모양은 우리의 서낭당 옆 돌무더기와 영락없이 닮아 몽골계 닮은 꼴 문화를 실감하게 한다.
 차로 두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짜오허샹(昭河鄕)이라 불리는 몽고족의 마을. 차가 도착하자 술을 좋아하는 몽고족답게 민속의상을 입은 원주민이 차의 문을 열기 무섭게 다가와 이색적인 권주의식을 펼친다.
 중지를 술잔에 담갔다가 엄지와 중지로 하늘과 땅, 그리고 자신의 이마에 한차례씩 튀겨준 후 마시는게 주인에 대한 예의란다. 비와 풍년, 그리고 방문자의 축복을 기원하는 일종의 환영의식.
 이 마을에는 30여개의 관광용 ‘빠오’와 식당, 그리고 승마를 위한 말 대여소 등이 있어 지역민들과 숙식하며 유목생활을 하는 몽고족의 가정과 초원, 제단 등을 둘러 볼 수 있다. 식당에서는 오이와 피망, 토마토, 땅콩 등의 밑반찬이 곁들여진 양고기가 주식.
 저녁 무렵에는 다양한 민속공연과 건장한 남자들이 펼치는 내몽고의 전통씨름을 함께 즐길 수도 있다.
 중국정부 차원의 몽고족들에 대한 정착 정책에 따라 요즘은 실제로 양떼를 몰고 유목생활을 하는 몽고족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지만 초원과 강기슭에 녹아있는 유목 문화의 역사들이 이제 관광자원으로 이들의 주수입원이 된 셈이다.
 극명하게 드러나는 문명의 차이를 걸러내며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이들도 여느 관광지와 마찬가지로 전통과 문화가 상품화되고 이를 주수입원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문화적 상실감은 어쩔 수 없어 보인다.
 광활한 초원만이 펼쳐진 시 외곽과는 달리 여러개의 라마교 사원이 있는 후허하오터 시내는 석림곽늑로(錫林郭勒路)와 중산로(中山路) 등을 중심으로 대형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선 번화가들이 펼쳐진다.
 여느 중국의 도시들과 다른건 간판마다 중국어와 몽고어를 같이 사용하고 있다는 점. 도심의 번화가 구경도 좋지만 서쪽의 구시가지를 둘러보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후허하오터역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데다 최근 200m가량 떨어진 곳에 별관까지 개관한 내몽고박물관에는 징기스칸 왕패를 비롯해 전통빠오의 내부와 선사시대의 유물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또 ‘무짱’(墓葬)이라고 불리는 왕족이나 귀족의 나무묘 원본이 그대로 이동 보관되어 있다.
 이밖에 도심에서 200km 가량 외곽에 위치한 몽고 최초의 초원관광지인 ‘거근타라’ 부근에는 사회주의국가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기발한 이벤트 들을 펼치며 관광객들을 유치하고 있다.
 한국문화가 분단의 역사를 넘어 세계화를 지향하고 있다면 이곳에서 본 몽고초원은 이미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던 정물화 같은 정적이고 단조로운 풍경은 아니었다. 그들은 어느새 관광뿐 아니라 제조업과 유통등 여러방면에서 개방과 타고난 상술, 그리고 다원성을 무기로 아득한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어 보였다. <이원구기자> jjlwk@incheontimes.com

▲ 인천일보, INCHEONILBO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