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프로야구 한국시리즈가 뜨겁게 달군 10월, 인천지역은 구도의 열기가 살아나며 연일 홈경기 매진으로 이어졌다.
정체성이 없다는 인천시민들을 메이저리그급 문학야구장으로 발길을 돌리도록 하고 모두 함께 인천을 외치는 장면이 공중파 방송을 통해 중계될 때 이를 본 인천사람이면 누구나 가슴이 뭉클함을 느꼈을 것이다.
운동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가족과 함께 경기장을 찾았으면 하는 마음이 한번쯤은 생겨날 만했다. 이때 기자에게도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던 지인들로부터 은근한 전화가 걸려왔다. 안부와 함께 야구장 입장 가능성을 타진했다. 미처 예매를 못해 현장에서 표를 구할 수 있는 지, 매진이 됐다면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것이 주요 골자. 이들 또한 평소 야구팬은 아니었다. 연고팀 SK와이번스가 시즌 중 4위로 턱걸이한 뒤 준플레이오프부터 한국시리즈까지의 활약을 보면서 직접 야구장으로 달려가 응원을 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우러난데다 가족들의 등살(?)에 배겨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여러 운동종목 가운데 야구경기에 불과했지만 인천시민이란 것이 이렇게 자랑스러울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다른 지인은 역시 인천은 구도(球都)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고 야구는 언제나 시민들의 가슴에 불을 지핀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스포츠의 최대 강점이 연고팀 SK와이번스를 통해 살아났다.
이렇게 SK와이번스가 선전을 하고 있을 때 본보는 1면 사회면 스포츠면등 여러 면에 걸쳐 SK 소식을 실었다. 시즌중 첫 1위로 나선 때와 디비전시리즈등을 중심으로 보도했다. SK 창단 4년만에, 그리고 한국시리즈가 인천에서 열리기는 현대 이후 처음 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지역의 최대 화두는 당연히 홈팀인 SK가 삼성과 기아를 꺾고 인천에서 서울로 연고를 바꾼 현대를 누를 것인지에 있었다. 삼성과 기아를 파죽지세로 꺾자 인천의 열기는 뜨겁게 달아올랐고 타지역에선 이런 분위기를 무척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시민들 사이에선 한국시리즈 5 6 7차전을 왜 서울 잠실에서 해야하는 지, 오히려 시설이 좋은 인천 문학야구장에서 홈팀 SK가 경기를 치르고 상대팀 현대는 서울서 해야한다는 여론까지 조성되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에선 본보의 이런 보도행태를 두고 인천일보가 스포츠지이냐는 비야냥 소리를 내기도 했다. 다른 중요한 일을 제처두고 여러면에 걸쳐 보도하는 것은 너무 심한 것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체성이 떨어지는 인천지역에서 비록 스포츠지만 이를 통해 시민들을 인천이란 카테고리속에 한데 묶는 구심점 역할을 하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시민들의 지역에 대한 관심도는 10월30일 있은 시의원 재보선 선거를 통해서 알 수 있을 정도. 연수구의 선거구에서 투표율이 15%에도 미치지 못한 점으로 미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투표율이 낮다고 하지만 이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천에 대한 정주의식이 생겨날 리 없기 때문에 시민들은 돈 벌면 서울로 떠날 생각으로 가득하고 결국 인천은 거쳐가는 변두리 도시로 전락할 수 밖에 없어 정체성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내일의 주인공인 청소년들이 부모세대와 달리 인천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높다는 교육관련단체의 설문조사결과가 위안을 주고 있다.
이제 지역에 흥분과 한숨, 아쉬움을 남긴 야구잔치는 끝났다. 시민들이 보여준 열정을 어떻게 스포츠뿐 아니라 다른 분야로 담아낼 것인 지가 숙제로 남았다. 내년에는 야구에다 축구까지 홈팀이 K-리그에서 뛰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어서 문학스포츠타운에 시민들이 줄을 이을 것으로 기대된다. 스포츠라 하더라도 인천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면 지면을 아끼지 않고 보도하는 것이 지역주민과 함께 하는 지방지가 아닐 까. <엄홍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