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규/인천발전연구원장

 16시30분 후쿠오카행 비행기, 이 글이 독자의 손에 들어갈 때쯤이면 난 아마 하늘에 떠 있겠지. 93년 이후만도 네번째의 기타큐슈시 방문길이니 나의 얼마안되는 여행경력에 비하면 퍽이나 잦은 만남이다.

 기타큐슈는 인구 1백2만, 후쿠오카시와 함께 후쿠오카현의 2대도시, 세계최대의 철강공장인 신일본제철, 위생기기회사인 토토등이 있는 큐슈지방 굴지의 중화학공업도시이다.

 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매연으로 하늘은 언제나 시커멓고 창문을 열어놓을 수가 없던 도시. 도우카이만의 물고기는 폐수로 떼죽음을 당하거나 살아있어도 등휘고 눈하나 없는 병신들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55년께부터 고도경제성장시대를 구가하던 그들에게 있어 공장에서 나오는 일곱빛깔의 연기는 번영의 상징이요 부의 대명사일 뿐이었다. 그러던 그들이 언제부터인가 시내중심가 소하천에서 한가롭게 낚시를 하는가 하면 90년에는 유엔으로부터 환경최우수도시로 선정되기에 이르렀다.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고 했던가. 1959년 공장지대 한 국민학교에서 측정한 강하 분진량은 64t/㎢/월이었고 1965년에는 급기야 80t/㎢/월로서 일본 제1을 기록하였다. 까만 침, 까만 콧물이 나오고 하얀 옷은 아예 입힐 엄두를 못내는 최악의 환경상황에서 주부들은 분연히 일어났다. 「사장은 반성하라」 「어린이를 보호하라」 「시는 대책을 세워라」

 68년께부터 시는 공해발생원에 대한 규제와 함께 주택과 공장지대를 분리하는 주공(住工)분리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대대적인 완충녹지사업을 실시하였다. 공장들도 직업병 판결을 받고 많은 배상금을 지급하느니 이를 미연에 방지하려는 노력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1994년 같은 장소에서 측정한 분진량은 7t/㎢/월이었으니, 65년에 비해 11분의1까지 줄어든 수치였다. 죽음의 바다였던 도우카이만에는 사라졌던 물고기들이 다시 돌아와 100종 이상의 어패류가 확인되었으며, 세계 87개국에서 1천6백여명의 연수생들이 이들의 성공사례를 배워가고 있다.

 우리는 언제 회색도시, 콘크리트 도시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을까. 언제쯤에나 도로 곳곳에 쌓인 먼지 오물, 함부로 날아다니는 종이 부스러기, 스티로폼 조각들을 볼 수 없게 될까. 누가 단속을 하든 안하든 시민들의 건강을 생각해서 환경기준을 스스로 지켜나가는 기업인들을 우리도 보게 될까.

 기타큐슈는 1963년에 태어난 젊은 도시이다. 고쿠라, 도바타, 와카마츠, 모지, 야하타 등 5개의 비슷비슷한 소도시로 나누어져 있던 그들은 도시개발, 상하수도, 도로, 관광, 유통등 무엇하나 제대로 해낼 수가 없었다. 다른 큰 도시들과의 경쟁은 애시당초 불가능하였다. 학자등 뜻있는 사람들이 나섰다. 시장, 유지들도 기득권을 포기하였다. 아예 처음부터 그들에게 기득권이란 없었는지도 모른다. 오랜 진통끝에 드디어 그들은 일본에서 다섯번째 큰 도시를 만들어 놓고 장렬하게 산화하였다.

 일본에서는 요즘 기업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지방자치단체에도 M&A 바람이 한창이다. 시정촌(市町村)의 17.6%인 110개가 살아남기 위해서 너도나도 M&A를 구상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에서도 95년 합병특례조치법을 개정하여 유권자의 2% 동의로 합병발의가 가능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도시가 합병을 이루어낼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세금 걷어 공무원 인건비도 댈 수 없는 자치단체. 시경계도 없고 같은 도로, 같은 버스, 같은 백화점, 같은 직장에 다니면서도 뿔뿔이 찢어져 있는 자치단체들. 도시는 하나의 유기체인데 한 도시안에 구라고 하는 별도의 자치단체를 두어 분할통치하는 이상한 제도. 주민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강화군이 이리 가야한다 저리 가야한다 하릴없이 떠들어대는 말많은 정상배들. 기타큐슈를 만들어낸 사람들이 새삼 다시 보인다. 기타큐슈의 기적은 기타큐슈만의 기적인가.

 기타큐슈에는 지방지가 하나밖에 없다. 전에는 여러개의 신문이 난립해 있던 적도 있었지만 하나 둘씩 없어지기 시작하여 94년부터 니시니혼신문 하나만 남게 되었다. 좋은 스태프와 유익한 기사로 그 신문은 중앙지보다 더 많은 독자를 자랑하고 있다. 독자의 선택이요. 신문들 자신의 판단이었다. 우리도 그런날이 올 수 있을까. 언제쯤일까.

 「스에요시 고이치」시장. 그는 잘 생기지도 않았다. 고향사람도 아니다. 정치적 백그라운드도 없다. 그렇다고 개인적인 인기가 높은 사람도 아니었다. 오직 건설성에서 전문가로서 쌓은 경륜과 성실성으로 당선되었다. 그 이후 업무추진성과가 인정되어 재선, 삼선되었다.

 지난 1월31일 자민, 민주, 공명, 사민당등의 초당적 지지로 4선하여 최장수시장을 향하여 줄달음치고 있다. 96세의 노모를 모시고 살면서 매일 웃겨드리는 일 이외에는 하는일이 없다고 겸손해하는 그는 65세이지만 그냥 소년같고 한 길만을 가는 사람이다. 정치인이면서도 정치적이지 않은 사람, 행정가이면서도 행정적(경직ㆍ관료적)이지 않은 사람, 그리고 그런 사람에 몰표를 몰아주는 유권자들-다 범상치 않은 사람들이다.

 여론조사를 보면 인물본위로 투표하겠다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선거결과를 보면 항상 중앙정치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네 풍토에서는 그저 남의 얘기일 뿐인가. 언제쯤이면 우리도 양식과 경륜, 일로 평가받는 날이 올까. 「스에요시」시장의 건승을 빈다.

 우리 연구원에 지면을 허락해준 인천일보에 감사한다. 앞으로 연구진들이 번갈아가며 책상머리에서 얻어진 편린들을 지역현안과 한데엮어 독자들에게 다가가려 한다. 때로는 두눈 부릅뜨고 때로는 화사한 미소를 머금고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게, 편향되지 않게 우리들의 문제를 함께 고민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