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도 한국국악협회가 주최한 전국민요경창대회 명창부에서 민요부문 대상을 차지한 차석환씨(45ㆍ인천시 서구 신현동 284).

 차씨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민요 명창 이은관, 최창남씨와 견줄 정도로 국악계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특히 목청이 좋아 민요에서 꽤 까다롭다고 알려진 고음처리는 그의 장점으로 꼽힌다.

 차씨는 어렸을 때부터 동네할아버지들 어깨너머로 민요를 익혔다가 성장해 소리꾼의 길에 들어선 케이스. 검단 출신인 그는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하다 소리에 미쳐 소리꾼이 됐다.

 36세때 경기민요 이수자였던 김국진씨로부터 경기민요, 서도소리를 배우러 갔다가 전수장학생이 됐고 무형문화재 제19호 선소리 예능보유자 황용주선생의 눈에 띄어 산타령을 사사했다. 당시 황선생은 『장래성이 있어 보인다』며 직접 종로3가 자신의 국악원에까지 불러 그에게 산타령을 가르쳤다.

 선소리는 경서도 민요중에서 서서 하는 일종의 입창이다. 이 가운데 명산대찰을 노래하는 산타령은 그의 주종목. 여러 곡의 산타령을 혼자 1시간 이상 완창하는 경우는 차씨 외에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차씨는 대통령상을 받은 이듬해인 지난 96년 산타령 이수자가 됐고 91년, 92년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입상하는 등 민요경연대회에서 수차례 수상했다. 경기민요에서 그보다 앞선 선배나 이름난 명창도 많이 있지만 이 부문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는 남자로서 그가 유일하다.

 전국 국악공연이나 지방공연에 간간이 얼굴을 내밀고 있는 그는 지난 91년도 부평구 부평4동에 산타령 국악연수원을 개설, 학생이나 주부들을 대상으로 강습하고 후계자를 양성하는데 힘쓰고 있다. 또 무형문화재 제19호인 산타령보존회 인천 북구지부장을 역임하고 있기도 하다.

 『시대에 밀리고 일반인들의 관심이 적은 탓인지 명인이나 명창으로 알려진 사람들 대부분은 생활이 어렵고 안정되지 않은 편이지요. 이들이 제대로 대접 받을 수 있도록 시나 정부가 좀더 지원과 관심을 가져줘야 합니다.』

 차씨는 『민요만으로는 살기가 어려워 그동안 포기한 싶은 순간이 많았었다』며 『명인이나 명창들 대다수가 생활이 어려워 안정된 생활을 못하고 있는 만큼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도록 공연무대를 자주 마련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구준회기자〉 j hkoo@incho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