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칼럼-뒤틀린 삶터와 자살
인천칼럼-뒤틀린 삶터와 자살
  • 승인 2003.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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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오 경기본사 취재본부장

‘실직비관 30대 자살’(8월12일),‘생활고비관 30대 주부자살’(8월11일), ‘정몽헌 현대아산회장 투신자살’(8월5일), ‘생활고 비관 30대 목매 자살’ (8월6일), ‘아들 카드빚 비관 60대 자살’(7월31일), ‘생활고 비관 일가족 4명 동반 투신자살’(7월17일)…
요즘 신문 사회면에 장식하고 있는 제목들이다. ‘자살 릴레이’는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경제난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지난해 총자살 건수는 1만3천55건으로 전년 1만2천277건에 비해 6.3%가 증가했다고 한다. 하루에 3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끓는 셈이다.
특히 지난 98년 국내외적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극에 달했던 외환위기 당시 1만2천458건에 이르렀던 자살사건이 다음해인 99년 1만1천713건으로 줄었다가 2000년 이후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자살의 주요원인은 실직과 카드빚에 따른 생활고 사업실패 등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지난 6월말기준으로 신용불량자가 322만명을 넘어섰으며 이중 50%이상이 생활고 때문에 빚을 얻었다는 것이다.이는 극심한 경제침체로 인한 경제적 빈곤과 실업이다.
그리고 두러움과 외로움,삶에 대한 염증,우울증과 절망,삶에 대한 불안과 불만,직장에서의 불만과 스트레스,질병과 나이,정치적 동기나 삶을 계속 영위하고 싶은 욕구결여 등이 자살을 하는 이유다.
최근 정몽헌회장의 자살로 상류층 사람들도 자기분야에서 성공하지 못하거나 사회적으로 낭패를 봤을 때 그것을 자기 탓으로 돌리고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열패감에 빠져 자살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기업을 경영하며 외롭게 남북경제교류사업을 추진해온 정 회장이 꼭 죽음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개인적으로 탓하고 싶지는 않다. 정치권이 시대에 뒤떨어진 이전투구로 날을 새고 검찰이 수사압박으로 한 경제인을 옥죄면서 죽음으로 몰아간 비정한 우리 현실도 탓하고 싶지 않다.
또 어린 자식들의 삶을 죽음으로 대신 선택한 많은 어머니들의 비정함을 탓하지도 않겠다.다만 요즘 ‘자살릴레이’를 보면서 우리의 삶터가 온통 뒤틀리고 헝클어져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짧은 기간에 이뤄진 고도성장에 따른 결과가 사회 곳곳에 사람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국내에 들어와 있는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제일 먼저 배우는 한국어가 ‘빨리 빨리’라는 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지난 수십년 동안 가난의 질곡을 이겨내기 위해 우리는 눈물겹도록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왔다. 여름철에 해외에 나갔다 오는 사람들에게 많이 듣는 이야기가 외국에서 한국인이라면 선진국 대우를 해준다는 사실에 정말 뿌듯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우리 사회 각 부분에서 ‘더 많이, 더 크게, 더 빨리’라는 깃발을 내걸고 양적 경제성장을 추구해온 결과일 것이다.요즘 나온 ‘2만달러 시대’ 가 구호로만 들리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비정한 한 어머니의 삶도 처음 정신적인 어려움을 증오심으로 바꾸다가 그것이 제대로 발산되지 못하자 자신에 대한 분노로 표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이 사회가 받아주지 않기 때문에 자살을 도피처로 삼았다고 본다.
최근 정 회장의 죽음 소식을 접한 프랑스의 탁 닛한 스님은 정회장이 자신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면 자실하지는 않았을텐데 하며 아쉬워했다는 언론 보도를 봤다.
자신을 탓하기전에 고도성장을 향해 격심해지는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을 보듬어줄 사회안전망을 제대로 갖췄는가 하는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도시의 익명성,높은 실업율, 그리고 삶의 위기에 봉착한 개인에게 시련을 극복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회적 연결망이 없다는 것도 도시의 자살율을 높이는 한 원인이 된다’고 말한 프랑스 사회학자 뒤르켐의 지적은 이같은 사회적 연대책임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이들의 눈물을 닦아줄 사회적 연결망의 구축을 검토해 봐야 한다.
한때 ‘죽음’에 대해 생각을 안해 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어느 사회, 어느 문화에서든 인간들은 자살했다.삶을 포기하고록 한 결정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일이다.하지만 필자는 이 시대가 ‘자살’이라는 절박한 결정을 강요하거나 방치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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