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로 편집부국장
 7월22일,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는 여, 야 대선자금 공개 제의에 대해 ‘단호히’ 거부한다고 밝혔다. “사건본질을 호도하고 기존 정당을 부도덕한 범죄집단으로 몰아세우며 노대통령의 신당 기반을 확보하려는 음모가 깔려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고착화된 여·야 대립구조의 틀안에서 보자면 최대표의 이 발언에도 이해가는 구석이 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보통의 사람들보다 정당 정치인들의 가치판단에 따라 속절없이 우리의 정치가 끌려온 까닭이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이 대선자금 문제가 민주당에서 터져나왔기 때문에 한나라당의 대선자금은 공개 안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불투명한 정치자금이 웃물을 흐리고 한국 정치, 사회의 끊이지 않는 부정부패등 만악의 근원으로 지목되고 있는 판국에….
 7월20일, 중앙선관위가 나서 정치자금 수입내역 및 고액기부자 신상공개를 비롯, 정치신인의 사전선거운동, 모금을 허용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정치관계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국회 정치개혁특위 소속 의원 마저도 상당수가 그 주된 내용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있다. 특히 현역 의원들의 이해관계에 관련된 대목에서 그렇다. 하긴 선관위는 지난 1993년 8월 통합선거법안 제안 이후 현재까지 16차례에 걸쳐 정치개혁안을 내놓았으나, 선거비용 등 정치개혁의 핵심적인 것들은 현역 의원들의 반대로 상당 부분 현실화되지 못하고 오늘에 이른 것이다.
 야당 대표의 말과 국회 정치개혁특위의 태도를 새삼스레 거론하는 것은 한국 정치의 닫힌 구조를 지적하고자 함이다. 여, 야의 지리한 대립구도 속에 국민의 뜻이 외면돼온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민심은 그래서 늘 제자리를 못찾아 떠돌고 있으며 그 ‘떠돌이 민심’이 언제 어떻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지 몰라 선거때마다 전전긍긍 하는 것이 우리의 정치판이다.
 떠돌이 민심은 국민 일반이 바라는 최소한의 정치를 정치권이 담아내지 못하는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국민이 바라는 그 정치는 결코 대단한 것이 아니다. 국회의원 자신만의 안위를 위한 기득권과 이기심을 버리고, 공익을 추구하며 지역감정의 틀을 허물고 ‘국민의 상식’이 통하는 정치로 작은 희망들을 담아내자는 것이다.
기존의 정당들이 보통사람들의 참뜻을 외면하니 민심이 당연히 모여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선거 결과에 대한 예측이 쉽지 않고, 종종 무서운 파괴력을 동반하는 것도 ‘떠돌이 민심’이 보여주고있는 한국 정치의 서글픈 현상이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의 야당 독식과 대선 때의 극적인 여당 승리도 그랬다. 투표율은 계속 떨어지고 선거막판까지 이른바 부동층의 수는 줄어들지 않는 것도 떠돌이 민심의 한 단면이다.
 떠돌이 민심이 초래한 싹쓸이 현상은 지방선거에서 ‘쓸만한’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정당에 따라 ‘대충’ 선택케 함으로서 의정활동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떠돌이 민심은 또 우리의 만성적인 사회적 갈등의 바탕이 된다. 특히 불투명한 정치자금에서 초래되는 권력형 비리, 부정부패, 사회부조리는 빈부격차, 조세정의 대한 국민적 불신, 사회안전망의 미비 등과 맞물려 사회적 갈등과 대립을 부추기고 격화시킨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각종 설문조사 등을 통해 볼 때 국민들은 현 정당정치의 절대 개혁을 고대하고 있는 것으로 읽혀진다는 것이다. 다수의 국민은 여전히 국회의원의 자질로 도덕성과 개혁성을 손꼽고 있으며 기존정당과는 체질이 근본적으로 다른 변화된 신당, 새 인물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7월29일, 여야는 체포동의안이 제출된 정대철 민주당 대표와 박주선, 박명환 의원을 보호하기 위한 방탄국회라는 논란 속에 8월 임시국회를 여는데 합의하고 소집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보통사람들이 이를 어떻게 봐줄 것인지는 그들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고, 방탄국회라 해도 누가 말릴 도리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