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풍습에 음력으로 첫 쥐날(上子日=상자일)이면 쥐불놓기를 했다. 아이들이 장난삼아 논밭둑을 오가며 마른 잡초를 태웠다. 들쥐 구멍이라도 있으면 쥐 주둥이를 그슬린다며 특히 더했다. 짚으로 홰를 만들어 둑마다 불을 옮겨 붙이노라면 어둑어둑 해넘어간 뒤의 들녘은 온통 붉은 꽃이 활짝 핀듯 장관이었다. 혹 불을 잘못 다루어 바지 가랑이를 태우는 날엔 혼찌검이라도 당할까 걱정스러워 어두워서야 들어가 이눈치 저눈치를 살펴야 했다.

 정월열나흘 저녁에도 달맞이 횃불놀이와 함께 논둑태우기를 했다. 쥐불놓기라니까 언뜻 들쥐를 괴롭히는 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때도 그랬지만 오늘날로 치면 한해 농사를 앞둔 병충해 방제작업이었다. 마른 풀이나 짚단에서 월동하는 잡균과 병충을 불을 지름으로써 불소독을 하는 이치였다. 이를테면 옛어른들은 쥐날의 쥐불놓기를 통해 생활의 지혜를 나타내 보인 셈이며 어린이들의 불놀이는 불의 위험을 예방하는 교훈이기도 했다.

 그런데 벼농사에 결정적인 피해를 끼치는 도열병균은 월동하는데 매우 강하다고 한다. 병균에 오염된 볏짚을 실내에 저장했을 경우 74%가, 실외에 두었을 경우는 오히려 100%가 월동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겨울추위를 한데서 겪고도 얼어죽지 않는 것이 도열병균이다. 이렇게 잠복해 있을 잡초나 볏단을 태움으로써 완전한 소독의 효과가 있을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오늘과 같은 과학영농을 한다는 시절에도 쥐불놓기가 아닌 논두렁 태우기는 권장된다. 농사당국은 양력 3월이면 논두렁 불놓기를 권유하되 산불의 염려 때문에 바람없는 날을 택하도록 주의한다. 날씨가 찌푸리고 해동이 될 무렵 논두렁 불놓기를 하는 모습은 한폭의 묵화 앞에라도 선듯하다. 안개와 연기가 섞여 자욱하게 깔리고 검게 탄 잔디에 붉은 불꽃이 어울려 훌륭한 조화를 이룬다.

 지난 1일 두번째 쥐날을 보내고 난 요즘 들녘에 나가면 도시인들은 미처 경험해 보지못한 정경을 맛볼 수 있다.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냄새가 구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