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같은 불경기에 살아남기도 힘들지만 하나 하나 차근히 해나간다는 정신으로 사업을 키워나가 빚진 것 없이 여기까지 달려온 것 같습니다.”
81년 ‘똘이인쇄’란 간판으로 불모지나 다름없던 인천 인쇄업계에 이단아로 등극한 장찬정(56)씨의 잉크 자욱으로 시커멓게 찌든 두 손은 20여년 인쇄업의 어려움이 진하게 배어있다.
복사 한 장에 100원을 호가하던 80년 초반, 10년 넘게 다니며 안정된 직장생활을 보장받던 장씨의 인생에 ‘인쇄’란 글자를 평생 남길 사건이 발생했다.
그것은 사소한 자신의 이름에서 빚어진 헤프닝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자신의 어려운 이름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던 장씨는 결국 인쇄물마다 찍혀 나오는 자신의 틀린 이름을 바꿔볼 생각으로 인쇄업에 뛰어들어 평생의 업으로 남게 됐다.
또 인쇄업을 시작할 당시 유행하던 ‘똘이장군’이란 만화에서 상호 이름을 따 제일 부르기 쉽고 기억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제물포역 뒷편, 선인재단 정문 맞은편에 그 지역 처음으로 인쇄소를 차리고 장당 20∼30원씩의 싼 가격과 질좋은 인쇄물로 점차 입소문이 퍼져 현재는 수 억원을 호가하는 인쇄장비만도 여럿 갖고 있는 도화 2동 인쇄거리 터줏대감이 됐다.
장씨가 인쇄업을 시작할 당시는 암울한 군사정권 시절.
그래서일까. 그가 작업한 인쇄물에는 대우자동차 노조소식지 ‘근로자의 함성’ 이나 대학의 선전물이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장씨는 “시위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정보과 형사들이 찾아와 인쇄물을 수거해 가는 일은 허다했고 정부 비방 선전물을 작업할 때는 행여 들키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요즘 장씨가 주로 다루는 인쇄물은 개척 교회에서 발행하는 주보와 사회단체 홍보 전단지로 비록 돈 되는 인쇄물은 아니지만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꾸준히 해오고 있는 것.
“돈벌이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가장 필요한 인쇄물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란 생각에 지금까지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그의 인쇄소를 방문하면 진한 잉크향과 더불어 사람사는 훈훈한 인정까지 인쇄물에 고스란히 담아 나올 수 있다. <이주영기자> ljy@in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