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크향 넘어 진한 `고객제이주의'
 경쾌한 기계음에 맞춰 똑같은 규격의 전단지를 쏟아내는 인쇄기 곁을 인쇄기사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다.
제물포역 뒷편, 선인재단 정문을 마주 보며 20여개 인쇄소가 성업중인 도화2동 인쇄거리에는 쉴새 없이 돌아가는 인쇄기 소리를 새벽까지 쉽게 들을 수 있다.
이 거리가 조성된지는 불과 20여년전, 당시 일반인들에게는 복사란 개념조차 생소했을 때였다.
하지만 ‘똘이인쇄’란 간판으로 영업을 시작한 장찬정(56)씨를 시작으로 지금은 전단지에서부터 명함까지 인쇄의 모든 것을 이 곳에서는 단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
이 곳의 성공전략은 다른 지역 인쇄업체보다 싼 가격에 철야작업까지 해가며 정해진 시간에 모든 인쇄를 마친다는 것.
그러나 이런 고객제일주의 성공전략도 요즘의 세찬 경제 한파에 하나, 둘 문을 닫으며 삐그덕 거리고 있는 실정이다.
10여년째 중앙인쇄사를 운영중인 이정수(48)씨는 “인쇄업은 경제한파를 제일 먼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사업”이라며 “요즘은 대형화·대량화 추세에 맞춰 다들 서울로 인쇄를 맞기는 바람에 영세업자들이 인쇄소를 운영하기 힘들다”고 말해 현재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또 디자인에서부터 인쇄까지 한 인쇄소에서 해결되던 유통구조가 독립 영업으로 점차 분업화 되면서 영세 인쇄업의 입지가 점차 줄고 있다고 이 지역 인쇄업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은다.
인쇄는 보통 1연(전지 500장)을 기본 단위로 500매 내외를 인쇄하는 복사의 개념부터 1천∼2천매 사이의 경인쇄(마스터 인쇄)와 4천매 이상 다량을 인쇄하는 필림 인쇄로 나뉘며 각기 독립적인 인쇄기를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나라에서는 인쇄기가 생산되지 않고 있어 한 대에 수 억원을 호가하는 인쇄기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지역 인쇄업체들끼리 손을 잡아야 한다.
이에 이 곳은 각 업체가 전문적인 인쇄 기술로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인천시 인쇄 정보산업 협동조합’을 구성, 대량을 유통시키는 서울의 인쇄업체들과 힘겨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보완적인 관계를 20여년 유지한 이유인지 이곳 인쇄업체는 부정기적인 축구모임인 ‘고사장 축구회’와 야유회 등을 통해 돈독한 사업파트너로서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정수씨는 “예전에 비해 물량은 크게 늘었지만 성능이 뛰어난 인쇄기 도입으로 늘어난 물량만큼 수익이 좋아진 것은 아니다”고 말해 현재 인쇄업계가 처한 현실을 여과없이 증명했다.
인쇄업은 시대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 시대의 출판물을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과학기술발전과 함께 80년대 단색인쇄가 90년대 반자동 칼라화로 현재는 복사와 인쇄가 같은 개념으로 인식되어지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정비되지 않은 거리에 약간은 허름한 간판, 인쇄의 질에 대해 고개가 갸웃거려지기도 하지만 품질 하나만큼은 자신있다는 이곳 인쇄 상인들의 가슴에는 잉크색보다 진한 고객제일주의정신이 생생히 살아숨쉬고 있다. <이주영기자> ljy@in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