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균 논설실장
 6월, 국민 누구나 한번쯤은 지난해 그 뜨거웠던 순간들을 다시 떠올렸을 것이다. 꿈에 그리던 월드컵 16강을 넘어 8강, 4강의 기적을 이루어냈을 때의 감동과 환희. 그리고 밤새 이어졌던 축제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1년이 지난 새로운 6월, 주변 곳곳에서 갈등과 다툼이 일고 있기 때문일까. 문득 온 국민이 하나가 돼 월드컵 4강의 기적을 일구어 냈던 힘이 과연 무엇이었나를 생각하게 된다.
 히딩크의 지도력, 선수들의 투혼, 붉은 악마의 응원, 온 국민의 염원.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지만 무엇보다 큰 힘은 ‘우리’라는 하나됨이었다. 감독, 선수, 국민 모두가 하나로 뭉친 힘은 실로 대단했고 마침내 기적을 낳았다는 데 이론이 있을 수 없다.
 이전에는 그토록 강렬하게 경험하지 못했던 ‘우리’라는 힘이 어디서 비롯됐는가도 자명하다. 그 위대했던 힘의 출발점은 순수와 열정이었다. 히딩크와 선수들의 월드컵 꿈은 순수했다. 월드컵 본선을 목표로 기본에 충실했고 원칙을 지켜나가는 데 타협은 없었다. 또 열정이 있었다. 꿈을 이루기 위한 피나는 훈련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실력을 갖추었다.
 국민들을 하나로 묶는 결정적 역할을 한 붉은 악마는 순수와 열정의 상징이었다. 붉은 악마는 단지 16강 진출의 한을 푸는데 힘이 되겠다고 자발적으로 결성됐고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응원으로 국민들의 염원을 한 곳으로 모아 냈다. ‘우리’라는 힘은 결국 순수와 열정의 힘이었다.
 요즘 TV 방송은 특집 프로그램을 통해 지난해 월드컵대회의 감동과 환호를 다시 방영하느라 바쁘다. 하지만 이어지는 뉴스 시간에는 자기만 옳다며 서로 반목하고 다투는 소식 뿐이어서 국민들의 감흥은 식어버리기 일쑤다. 국민 모두가 ‘우리’였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심감이 충만했었는데…. 이내 공허함이 찾아 들고 탄식소리마저 흘러 나온다.
 무엇이 문제인가. 1년새 국민들이 왜 이렇게 틀려졌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따져보아야 할 것이 비전의 문제다. 국가에 있어 비전은 국민들이 함께 추구하는 목표이자 희망이다. 한편으론 국민들의 행동을 규범하는 보이지 않는 도덕률이기도 하다. 비전이 없을 때 국민들은 쉽게 좌절하고, 분열하고, 화내고, 다툰다. 바로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비전은 없는가. 아니다. 국민들이 공유하고 있는 비전은 명확하다. 선진국에 진입하는 것이 그것이다. 국민소득 2만불 시대를 하루빨리 열고 이에 걸맞는 시민문화를 가꾸어 나가야 한다. 우리는 국민소득 1만불을 넘어선지 8년째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이러다간 20년 이상 마의 1만불 고개를 넘지 못하고 있는 남미 국가들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고 스스로가 우려하고 있다. 국민들의 위기의식은 그만큼 비전이 분명함을 반증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비전은 한 곳으로 결집되지도, 표출되지도 못하고 있다. 새 정부는 굵직굵직한 10대 국정과제를 내놓았지만 출범 100일이 지나도록 우왕좌왕하고 있을 뿐 국민들이 품고 있는 비전을 하나로 엮어내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은 아예 국민들이 안중에도 없다. 국민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갈망하고 있는지 알 바 없다며 정쟁만을 계속하고 있다. 국민들이 희망을 갖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내 몫을 먼저 챙기겠다며 ‘제로 섬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것이다.
 역시 정치가 문제다. 국민들이 공유하고 있는 비전이 있는데도 이를 하나로 묶지도, 동력으로 활용하지도 못하고 있다. 리더십이 없는 것이다. 순수와 열정의 힘으로 전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했던 히딩크와 태극전사들, 그들이 그리운 6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