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 지방의원들의 금반지
데스크칼럼 - 지방의원들의 금반지
  • 승인 2003.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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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혁철 정치부장 
 92년 12월쯤이다.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지방자치가 91년 6월부터 재개됐으니 그저 2년이 채 안 된 때였다.
 의원으로 나선 선량들이나 그들을 맞이하던 공무원들이나 양쪽 모두 처음 시작할 당시의 당황스럽던 심정이 다소 무뎌지면서 차츰 요령이 생길 무렵이기도 했다.
 지금이야 부평구와 계양구 의회로 각각 나뉘었지만 그 때는 인천 북구의회가 의원 정수만도 44명일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지방의회였다.
 그 해 12월 한달간은 북구의회가 돈과 씨름을 벌였던 시기였다.
 무보수 명예직인 구의회 의원들에게 집행부인 구는 적지않은 예산을 여비 일비 식비 간담회비 등의 각종 명목으로 배정했다가 그만 지나치게 많은 돈이 남아버렸다.
 이대로 가다간 예산이 불용처리 될 것이고 다음 회기연도 예산 세울 때 예산 모자란다는 푸념이 자칫 명분 없어질 노릇이었다. 참고로 예나 지금이나 예산 타 쓰는 사람들 치고 예산 남아돌아 고민인 사람이나 기관은 없는 법이다.
 구청 공무원들이나 의원들이나 모두 전전긍긍.
 우선 일차적인 해법은 속칭 ‘먹어조지기’였다.
 12월 한달 회기중 날이면 날마다 점심 저녁으로 엄청난 밥 값을 써댔다. 구의원이나 구의원 친척이 운영하는 고급 밥 집의 한끼니 밥 값으로 보통 150만원대가 지출됐다. 날마다 파티였고 의원들 뿐아니라 공무원을 포함해 그저 안면이라도 있는 사람이면 그 밥상에 다 들러 붙었다.
 다음 해법은 기념품이었다.
 닷 돈짜리 금반지를 하나씩 만들기로 했다. 의원 44명만 만들어 끼자니 좀 면구(面灸)스러워 아예 50개를 만들었다. 구청장, 부구청장, 국장 3명, 의회 사무과장 고생했으니까 당신도 하나.
 그래도 돈이 남았다.
 정확히 나눴다. 자칫 푼 돈에 의(義) 상할 수있으니까.
 의원들은 회기 마지막 날 22만4천원이 든 흰봉투를 하나씩 챙겨들었다.
 일비도 여비도 아닌, 아무 명분없는 그냥 돈이었다.
 아무도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고 집행부와는 오히려 신나는 짝짜쿵이 이어졌다.
 의회와 집행부가 손발을 맞추면 못할 일이 어디 있겠느냐는 기고만장이 일을 낸거나 다름없다.
 
 이듬해 2월 마침내 일은 터졌다.
 인천일보는 당시 구의회의 장부를 입수해 특종을 터뜨렸다.
 부평 사람들은 너나없이 북구의원들을 만나면 그들의 손부터 봤다. 도대체 어떻게 생긴 금반지일까 하고. ‘밥 좀 사라’는 비아냥도 들어야 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사건으로 구의회 의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구의원 전원과 반지를 나눠받은 공무원들이 횡령 혐의로 검찰에 입건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다.
 
 딱 10년전의 일이다.
 굳이 옛날 일을 들춰 지방의원들을 망신주자는 건 아니다.
 미구(未久)에 지방의원들의 유급화 관련 법안이 국회에 상정될 예정이다.
 지방의원들의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살펴보면 유급화는 사실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어린아이 손 붙잡고 집 밖으로 한 발짝만 떼도 돈이 드는 세상이다.
 항차 수천억원, 수조원의 예산을 감시 감독하는 책무를 진 엄청난 일을 떠 안고 가는 의원들의 호주머니야 ‘봄 볕에 눈 녹는 격’일게다.
 지방의원 자리를 거저 준대도 ‘무보수 명예직’이 주는 경제적 가치를 셈할 수 밖에 없는 속물인 우리들에게 정작 그들을 나무랄 자격은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지방의원들의 유급화에 대한 걱정은 혹시, 정말 혹시 그들이 임도 보고 뽕도 따는 일에만 매달리지 않을까라는 걱정이다.
 북구의원들이 그렇게 흥청망청 제 앞가림도 하지 못한채 푼 돈의 단물에 빠져 있을때 그들이 정작 감시해야 할 집행부의 공무원들은 수십억원의 세금을 도둑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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