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데스크칼럼-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 승인 2003.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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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수 문화부장
 1947년 11월29일 유엔총회 본회의장. 무려 4차례의 아랍-이스라엘간 전면전과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국지적 분쟁. 교전 당사자의 피해는 물론 엄청난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가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는 비극의 씨앗이 잉태되는 순간이었다.
 이날 팔레스타인지역에 아랍과 유대 두 개의 독립국가를 세운다는 분할안이 통과됐다. 찬성 33표, 반대 13표. 국고가 텅빈 제3세계 신흥 독립국들의 손이 찬성쪽으로 기울어진데는 달러의 위력을 앞세운 미국의 역할이 지대했다. 정작 땅의 주인인 아랍인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내려진 결정으로 팔레스타인 인구의 33%를 차지하면서 영토의 7%만을 갖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땅의 56%가 몫으로 돌아갔다.
 아랍의 강력한 반발이 이어지는 가운데 1948년 4월9일 그 유명한 ‘데일 야신촌 학살사건’으로 빚어진 극도의 공포분위기속에서 꼭 55년전 오늘(5월14일) 유대인들은 아랍인들을 몰아낸 그 곳에 이스라엘국가의 건립을 선포했다. 2천년동안 갖은 박해속에 세계 이곳 저곳을 떠돌던 유대민족에게는 더없는 축복이었지만 그 뒤에는 척박함을 일구며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터전에서 영문도 모른채 하루 아침에 쫓겨난 팔레스타인인과 주변 아랍형제들의 피눈물과 처절한 증오가 뿌려졌다.
“형제의 아픔을 같이 한다. 이 것이 이슬람의 전통이고 아랍의 대의다. 이스라엘 건국은 구미열강과 시오니스트 유대인에 의한 아랍영토에의 침략일 수 밖에 없다.”
 4차례의 전면전, 수없는 국지적 분쟁, 9·11테러, 걸프전과 이라크전에 이르기까지 주변이 뒤섞여 서로 죽고 죽이는 증오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지금도 가장 활발히 타오르는 세계의 화약고 중동문제는 바로 팔레스타인에서 시작돼 팔레스타인에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같은 비극의 씨앗은 이미 30여년을 거슬러 1차대전중 해외영토확장 전쟁에 여념이 없던 제국주의 열강에 의해 비롯됐다. ①후세인-맥마흔 서한(1915) ②사이크스-피코협정(1916) ③발포어선언(1917).
 ①은 영국이 오스만제국에 싸워주는 대가로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아랍지역에 독립을 보장하겠다며 당시 오스만제국 식민치하에 있던 아랍인들을 끌어들인 내용이며 ③은 영국이 전쟁참여대가로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민족국가 창설을 약속한 것이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는 놀랍게도 이 사이에 ②를 통해 전후 중동지역을 나눠 갖기로(영국은 ‘팔’과 바그다드. 프랑스는 시리아 해안지대와 그 북부일대) 비밀히 합의해버렸다. 제국주의적 속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 같은 구미열강의 비도덕적 정치음모가 바로 오늘날의 중동 문제를 가져온 본질적 핵심인 것이다.
 이라크전의 광풍이 지나간 지금 미국과 러시아, 유엔, 유럽연합 등 이른바 ‘쿼텟’(Quartet:4개 중동평화 중재당국)에 의해 새로운 중동평화안 로드맵(road map)이 논의되고 있다. 지난달말 마흐무드 압바스 팔 총리와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에게 전달된 로드맵의 주요 골자는 이-팔 양측의 즉각 휴전, 팔 테러조직 소탕, 팔 거주지에서의 이군 철수, 2001년이후 건설된 이 정착촌 철거를 통해 오는 2005년까지 3단계에 걸쳐 완전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은 로드맵의 앞길이 결코 순탄치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샤론 총리가 정착촌활동 동결 불가입장을 천명한데다 무장해제를 요구받은 하마스 등 각종 무장단체들의 반발도 만만치않다. 압바스 총리의 지도력과 장악력도 아직 검증되지 않은 상태다. 양 측을 방문한 콜린 파월도 공허한 메아리만 가슴에 안은채 빈 손으로 돌아갔다. 설사 이러한 난관이 극복되더라도 팔레스타인 난민과 예루살렘문제라는 거대한 산이 가로놓여 있다. 로드맵이 오슬로협정(1993)이나 캠프데이비드 회담(2000)처럼 과거 여러차례 시도됐다 성과없이 무산된 중동평화정착노력의 재판이 되지않을까 하는 우려가 벌써부터 일고 있다.
 미국이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며 지구촌 구석구석을 휘젓고 있는 요즘이다. 테러와 대량살상무기보유에 대한 응징이 무차별적으로 이뤄지면서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이다. 중동평화문제가 더 이상 강건너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 일이라는 인식과 관심을 가져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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