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텀벙이 거리로 유명한 인천시 남구 용현동에서 송도고등학교쪽으로 가다보면 시립사격장 초입새에서 야트막한 언덕배기 하나를 만나게 된다.
 인천사람들이 일명 ‘조개고개’라고 부르는 이 곳은, 언덕이라고도 할 수 없을만큼 무릎을 꺽고 주저앉아있지만 한 때는 제법 볼륨이 있었던 모양이다.
 ‘조개고개’라는 이름은 그 아랫편에 조개조합이 있었던 것에서 유래된 별칭.
 하지만 갯일을 마치고 고개를 넘던 아낙들이 조개를 하나 둘씩 흘리고 가는 바람에 이런 이름을 얻었다는 재미있는 설명이 곁들여지기도 한다.
 한때 지지리도 가난하고 옹색했던 이 시골 갯마을은 이젠 자동차와 사람의 통행이 빈번한 도심 언저리로 변하고 있다.
 이 고개를 중심으로 동양화학으로 들어가는 골목과 송도역쪽 도로양편에는 20-30년은 됐음직한 단층 슬라브들이 여기저기 박혀있다.
 어김없이 ‘홍어회집’이란 간판을 이고 있는 것이 이 집들의 특징.
 충남횟집, 옥골 홍어, 할머니 홍어, 흑산도 홍어 하는 식의 홍어집 13곳이 다정한 오누이처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이른바 ‘조개고개 홍어회골목’이라고 불리는 곳.
 이 골목에 들어서면 제철을 맞은 홍어와 새콤달콤한 양념으로 미각을 돋우는 홍어회를 싼 값으로 즐길 수 있다.
 여기에다 코끝을 ‘싸∼’하게 쏘는 홍탁의 짜릿함이란...
 탐스런 붉은 빛깔의 홍어무침을 다시마에 얹어 한 입 베어물면 겨우내 잃었던 입맛을 단번에 되찾을 수 있다.
 음식끼리 궁합이 너무 잘 맞아 ‘삼합’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홍탁, 돼지 삼겹살, 묵은 김치를 한 젓가락에 올려놓고 걸쭉한 좁쌀 막걸리 한 잔을 곁들여 얹는 그 순간엔 세상 부러울 것없는 푸근함을 느끼게도 한다.
 이젠 외지사람들에게도 명물이 된 이 골목에 처음 홍어집이 들어선 것은 지금부터 대략 36-7년전쯤의 일.
 인천에 일자리를 얻은 아들을 따라 충남 대천에서 올라온 김찬례 할머니(78)가 식당을 내면서부터다.
 당시 인근 훈련장 예비군을 상대로 밥장사를 하던 김 할머니는 아주 우연한 계기로 홍어무침을 반찬으로 내놓았다.
 반찬거리를 사기 위해 하인천 시장통을 뒤지던 할머니가 광주리에 잔뜩 담긴 홍어를 보곤 어릴때 먹던 무침요리를 생각해 낸 것.
 시험삼아 무쳐낸 홍어가 예비군들 사이에서 뜻밖에 좋은 반응을 얻자 아예 홍어집으로 업종을 바꿔버렸다.
 이후 입에서 입으로 홍어맛 소문이 번져나가면서 장사가 번창하자 하나 둘씩 가게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20여년전인 80년대 초께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예비군훈련장이 붐비던 80년대 중반에서 90년 중반까지 10여년동안이 이 골목의 전성기였다.
 당시에는 지금의 유수지가 풀장으로 이용될때여서 예비군들에다 풀장이용객까지 겹쳐 손님이 넘쳐날 지경이었다.
 “그 때는 정말 장사가 잘됐지, 자리를 차지하는 건 고사하고 마당에 자리를 깔고 앉아서 홍어를 먹고 갈 정도였으니까...’
 김 할머니는 장사가 번성했던 그 때를 빙긋한 미소로 떠올린다.
 훈련장이 없어지고 풀장이 사라진 뒤에도 한동안 장사가 쏠쏠했지만 어느때부턴가 손님이 줄기 시작했다.
 “IMF때부턴가요?. 손님이 줄더니 요즘은 정말 장사가 안돼요.”
 20여년동안 옥골홍어집을 운영해온 김판순씨(49세)는 텅빈 가게안을 들여다 보며 한숨을 짓는다.
 그렇다고 이 곳에서만 즐길 수 있는 홍어회 특유의 감칠맛도 덜해진 것은 절대 아니다.
 조개고개 홍어회골목에서 홍어회를 가벼운 주머니 사정으로도 푸짐하게 맛볼 수 있는데는 기실 숨은 비결이 있다.
 어차피 한 마리에 50-60만원하는 국산 홍어를 쓸 수 없다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
 대신 값싸면서도 홍어와 비슷한 맛을 내는 국산 간재미를 사용한 것이 성공의 비결이었다.
 “간재미는 칠레산 홍어보다 육질이 연하고 맛이 좋아요, 대신 값이 좀 비싸죠, 하지만 홍어맛을 내기 위해서 돈을 조금 더 주고 국산 간재미를 써요.”
 값을 더 치르면서도 국산 간재미를 고집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김판순씨는 홍어요리방법도 선선히 공개했다.
 우선 목포에서 택배로 배달해온 간재미를 막걸리에 넣고 손으로 주물러 간이 배게 한다. 적당히 부드러워진 간재미를 꺼내 고추가루, 생강, 마늘, 고추장 등 갖은 양념을 그 큰손으로 듬뿍 넣고 버무려낸다.
 미나리와 야채, 당근을 넣고 마무리를 한뒤 다시마와 함께 내놓으면 ‘군침도는’ 홍어회 요리 끝!.
 홍탁도 예전에는 직접 삭히기도 했지만 요즘은 대부분 목포에서 배달해 쓴다.
 홍어회, 홍탁, 홍어찜 모두 3만원에서 2만원선이라 3-4명이서 5만원만 내면 푸짐한 요리에 술 한 잔 걸치고 식사까지 해결할 수 있다.
 나른하고 피곤을 쉽게 타는 봄철, 맛깔나는 요리로 입맛을 되찾으려면 서둘러 ‘조개고개 홍어골목’을 찾아갈 일이다. <정찬흥기자> chjung@in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