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의 이라크 공습을 보며 매우 가슴이 아팠다. 바그다드. 이 얼마나 유서깊은 이름인가. 얼마나 환상을 자나내던 꿈의 도시였던가. 필자는 특히 좀 환상적인 정신의 소유자인지라 어려서도 아라비안 나이트를 즐겨 읽었고 그래서 이 이야기들이 주는 상상의 세계에 흠뻑 빠져 혼자 즐거워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바그다드는 대강 알고 있듯이 중세에는 문명세계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 이슬람권의 중심지였고 상업과 학문에 있어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던 도시였다. 고대에는 이 도시가 없었으나 바로 남쪽 아래에 있는 바빌론이 이집트의 멤피스나 테베와 함께 문명의 중심지였다. 이라크인들은 이같이 고대와 중세에 걸쳐 최고 문명을 일궈냈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지라 자존심이 대단히 강하다고 한다. 유럽인이나 미국인들이 찾아와 유적 유물을 볼때 이라크사람들은 “당신네들이 숲속에서 벌거벗고 살고 있을때 우리는 이런 고도의 도시를 만들어 살고 있었다”며 자기네 문화유산들을 자랑하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이런 바그다드가 무너지고, 바그다드 사람들이 폭도로 변하고, 그네들이 자랑하는 형제애는 한모금의 물과 빵때문에 짓밟히고 말았다. 지난 11일 이라크의 유엔대사였던 무하마드 알두리씨는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바그다드가 불타고 정권이 붕괴된 것보다 내 가슴을 찢어지게 한것은 위대한 문명의 발상지 사람들이 자존심을 내 팽개치고 약탈자로 변한 사실이다.”라고 말하며 울먹였다. 그의 말을 이해할만하다. 얼마나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동포들의 만행인가.
 그런데 바그다드와 다른 도시들에서 일어난 이같은 절도 강도 방화 약탈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한심하다고 비웃기에 앞서 하나의 깊은 진리를 찾아 내려는 노력을 해야한다. 그것은 절대권력이 어떻게 인간을 철저히 타락시킬수 있는가 하는 점을 생각해 보는 일이다.
 한 미국인 지휘관은 왜 약탈을 저지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럴 여유도 없지만 오랜동안 억눌려 살아온 사람들이 자유를 맛보니까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이며 이것은 과도기적 현상으로 어쩔수 없다고 말했다. 이 장군의 말은 진리의 일면을 드러낸 것이다. 절대권력은 그것이 정치적 권력이든 종교적 영향력이든 또는 시민적 집단의 힘이든 개인을 파괴하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거대한 힘이 오랜동안 군림하면 그 아래에서 개인은 왜소하게 도기 마련이다. 즉 개인의 양심은 설곳을 잃고 그의 영혼은 눈치나 살피는 서글픈 존재로 전락한다. 또 시민의 한사람으로서 가져야 하는 책임의식은 마모되기 마련이다. 만약에 절대권력과 절대적 가치체계에서 양심의 소리를 내다간 개인은 생존자체가 어렵게 되고 이단자로 취급된다.
 사실 이런 현상은 우리자신이 최근까지 경험한 것이며 아직도 그 후유증에서 제대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구촌 규모에서 살피면 서유럽과 북미대륙을 제외한 세계의 대부분 지역에서 이른바 권위극의 체제가 개인을 억압하고, 왜곡시키고, 타락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사람 또는 소수의 엘리트가 전체를 지배하며 그들이 내세우는 이데올로기에 복종해야 한다는 권위주의 사고방식은 우리가 잘 말라서 그렇지 국가단위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작게는 가정 그리고 회사같은 중간 집단에서도 횡행한다. 가부장적 지배라든가, 황제 경영이라는 말은 바로 이런 중간 집단에서의 권위주의를 뜻하는 것이다.
 아직도 ‘조직에는 어른이 있어야 한다’, ‘집안에서는 가장이 뚜렷해야 한다’는 말을 흔히 듣게된다. 물론 어느 조직이나 집단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위계 질서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위계질서를 잘못 이해해서 한사람 또는 소수가 전권을 행사하고 다수는 일사 불란하게 복종해야 한다는 생각은 대단히 어리석은 관습적인 사고형식이다. 지도자 또는 지휘자는 다수의 의견을 존중하며 집단내 이견을 조정하고 더러는 다수의 충동적 행위를 억제하는 민주적 지도자일 경우에만 참된 지도자인 것이다. 위압적 자세로 외형상의 질서나 유지하는 지도자는 집단의 활력을 떨어뜨리기 마련인 것이다.
 후세인의 동상이 무너지면서 바그다드 시민의 태도가 일변했다. 그것은 눈치보며 사는 권위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한 현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