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부격차 축소는 험난한 길
 허 선(순천향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새정부에서는 ‘빈부격차 완화를 통해 계층통합’을 달성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그것을 위해서 토지, 주식, 지식자본 등 자산분배의 불평등을 개선하고, 적극적 일자리 창출 노력과 고용안정을 도모하고, 조세의 형평성 제고를 통한 소득분배를 개선하고,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며, 주택과 교육과 같은 지출상의 애로 요인을 해소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해법이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김대중 정부에서도 ‘소득분배구조개선 3개년계획’ 등 이와 유사한 내용의 대책이 마련되어 추진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정부 기간 소득분배 상황은 이전과 비교하여 더욱 악화되었을 뿐이다. 통계청이 최근 내놓은 2002년 가계수지 동향을 보면 가장 최악이었던 1998년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고, IMF이전인 1997년의 수준을 회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일 정도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소득분배 상황이 미국보다 나쁘지 않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두 나라의 통계산출을 위한 조사대상이 다르고, 소득파악률도 차이가 난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 주장일 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소득의 자영업자들이 조사대상에서 대량으로 누락되어 있고, 일부 포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소득이 제대로 파악되어 있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덜 불평등하게 보이는 것이다.
빈부격차가 확대된 것은 그동안의 경제정책이 ‘돈이 돈을 벌게 하는 정책’이 되어 고소득계층의 소득을 계속하여 증가시켜온 반면 저소득층의 소득을 감소시켰고, 조세 및 재정정책의 분배효과가 미흡했으며, 사회보장제도의 소득재분배효과가 별로 크지 못했다는 것을 뜻한다. 김대중 정부는 ‘생산적복지’를 국정이념의 하나로 정할 정도로 수치상으론 복지를 확대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 중 가장 커다란 변화는 2000년 10월에 있었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시행이었고 김대중 정부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겨왔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도 소득분배상황을 호전시키고 국민들로 하여금 희망을 버리지 않은 채 살아가도록 하는데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을 뿐이었다. 김대중 정부가 소득분배 구조개선을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하게 된 요인 중 하나는 고소득계층의 반발을 누르지 못했고, 주요 정책을 기획하는 일부 경제관료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은 누구나 국가가 최저생활을 보장한다’고 자랑했던 기초보장법을 제정해 놓고도 새로운 법이 최초로 시행되는 2000년도의 예산을 전년도보다 오히려 4.0% 삭감했었던 적이 있었을 정도였다.
김대중 정부의 경험을 통해 보면 노무현정부가 ‘빈부격차의 완화’는 커녕 ‘절대빈곤’을 해소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기초보장제도의 시행으로 인해 우리나라에는 끼니를 거르는 노인이나 장애인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현재 기초보장수급자수는 법 시행이전 보다 적은 139만명에 불과하고, 아직까지 기초보장을 받지 못하는 최저생계비이하의 비수급빈곤층이 약 200만명정도 된다고 한다. 이렇듯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이유는 여전히 예산에 맞춘 수급자 선정이 이루어지고, 까다로운 선정기준이 시행되기 때문인데, 특히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해 탈락한 사람들 중에 노인이나 장애인과 같은 안타까운 탈락자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새정부에서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절대빈곤을 해소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200만 명에 달하는 비수급 빈곤층을 수급자로 포함시키는데 필요한 예산만 하더라도 대략 3~4조원 이상이 추가로 소요될 것이기에 ‘경제성장 우선의 마인드’를 가진 관료를 그대로 둔 채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들은 ‘복지는 근로의욕을 감소시킬 것이고, 복지 확충은 결국 경제를 악화시켜 국가의 장래를 망칠 것이고, 진정한 복지는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다’라는 주장을 여전히 되풀이하면서 복지예산의 증액을 반대, 혹은 방해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근로무능력자들이 방치되어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도 그들은 그런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현실이 그러하기에 그저 새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이 모든 것을 추진해 나가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