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철 기획취재부장>
 중국 사회에서 지난 10여년간 쟝저민(江澤民) 체제 아래 사실상 실권(失權)한채 자리만 지켰던 리펑(李鵬)의 존재는 늘 우스개의 소재가 됐다. 오죽하면 리펑시리즈가 있을 정도다. 한번은 리펑이 어떤 회의를 주재하게 됐다. 대개 상징적인 자리에 있던 리펑이기에 방망이를 치는 일은 그의 차지다. 쟝저민이 리펑에게 회의 시작을 선포하라고 해서 방망이를 쳤고 하루 종일의 장시간 회의 끝에 그만 끝내자고 해서 리펑이 또 방망이를 쳤다.
 기자들이 회의에서 무슨 얘기가 오갔느냐고 리펑에게 묻자 리펑 가로되 “자기들끼리 상하이 말로만 떠들어서...”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지방의 사투리가 심한 중국에서 상하이말과 베이징말은 완전히 달라 지방 출신은 표준어(普通話)를 구사할 수 있지만 베이징 사람들은 사투리를 전혀 모른다. 이른바 쟝저민 주룽지등 상하이방(上海幇)이 집권한 중국 권부의 당시 표준어는 상하이 방언이었다 할 정도였고 왕따 당한 리펑의 존재 가치가 뚜렷이 드러난 우스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중국의 북방을 대표하는 베이징과 남방을 대표하는 상하이의 지역적 위상이 권부에 어떻게 투영되고 있느냐는 비유이기도 하다.
 사례를 들라치면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같은 영남권이라 다 같은 경상도 사투리인 듯 싶지만 경북과 경남간의 말투는 다소 다르다. 박정희정권 이래 수십년간 나라의 메인스트림을 이루어오던 이른바 TK(대구 경북) 세력이 물러나면서 PK(부산 경남)가 집권할 때 청와대며 권부의 표준어가 바뀌었다는 농담이 심심챦게 오갔다. 발음에 있어서의 약간의 차이조차도 권력과의 거리를 가늠케 하는 지표가 될 수 있었기에 일견 당연지사다. 그만큼 권력과의 거리는 당사자나 주변 모두에게 긴장과 관심의 핵심이다.
 TK니 PK니 해야 ‘우리가 남이가’로 상징되는 영남 출신들간의 유사성이라도 있었지만 정작 MK(목포 광주)가 들어서면서 권부의 표준어는 문자 그대로 혁명적 변화를 맞았다. 말이 갖고 있는 상징성은 묘한 것이어서 같은 류의 말을 쓰는 사람들끼리는 단순한 동료의식을 넘어 살아온 날들의 문화적 코드를 동일한 토대로 묶어주는 힘이 총체적으로 스며들어 있는 법이다.
 의도적으로 같은 류의 말을 쓰는 일은 패거리를 조성하는데 긴요한 수단중의 하나가 되는 이치다. 조폭들의 언어습관이 한결같이 과장된 ‘형님!’으로 시작하는 것처럼. 권력의 주위에는 동류의 코드를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제자백가들이 유세(遊說)를 위해 식객으로 떠돌아도 가려가며 기댈 언덕을 찾기 마련. 다만 해질 녘 집집마다 기름이 뚞뚝 떨어지는 정어리 굽는 냄새를 기억하는 일이나 잔치집 귀퉁이에서 집어먹던 홍탁삼합의 기막힘에 대한 문화적 차이라는 건 따지고 보면 대부분 간헐적인 상념 속의 정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공적인 일은 사사로운 감정과는 달라야 함에도 인사의 실패는 대개 비슷한 코드에 지나치게 집착하는데서 비롯되곤 한다. 객관적이고 투명성을 전제로 적재적소에 훌륭한 인재를 등용 발탁하는 일은 고금과 동서를 막론하고 국가 운영의 기본 과제다. 탕탕평평(蕩蕩平平)의 실현에는 적지 않은 발목잡기가 따르기 마련이고 권력의 생명도 이같은 견제를 여하히 효과적으로 제어했느냐에 성패가 갈린다.
 신선한 기대 속에 출발한 노무현 정권이 최근 광주 민심 달래기에 나섰다는 얘기다. 청와대의 보좌관과 비서관들이 급파될 정도로 비상한 반향을 일으켰다. “각하, 요즘 광주 민심이 수상합니다”로부터 출발한 이 이상한 논리는 새 정부의 인사비중이 정작 표를 몰아준 호남지역을 무시한 채 이루어졌다는 평가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것이다.
 지난 시절의 타성이겠거니, 우린 제 밥그릇 챙기는 목소리를 내는 일을 특별히 비난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런 목소리들을 어떻게 적절히 분산시키느냐는 권력의 권한이자 의무다. 우린 지난 시절 영호남의, 영호남에 의한, 영호남을 위한 시대를 살아왔다. 이 나라에는 여전히 영호남이라는 이분법과 영호남 출신들만 있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 때마다 멀고 먼 아득한 권력을 발치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각하, 요즘 인천 민심이, 수원 민심이 수상합니다” 노무현정권의 보다 큰 틀을 향한 통촉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