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의 깊은맛-中國요리의 본고장
 인천시 중구 북성동과 선린동 일대 ‘자장면’거리. ‘청관거리’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우리나라 ‘자장면’의 고향이자 ‘원조 중국요리’의 거리다.
 ‘태림봉’ ‘태화원’ ‘풍미’ ‘자금성’ ‘상원’ ‘원보’ ‘북경’ ‘대창’ 등 이곳엔 현재 10여개의 중국음식점들이 중국요리의 진수를 보여준다. 4천만이 ‘중국집!’하면 떠올리는 ‘자장면’ ‘짬뽕’에서부터, ‘난자완스’ ‘팔보채’ 등 고급요리를 거쳐 코스요리에 이르기까지 수백가지 ‘산해진미’가 식도락가들의 입안을 즐겁게 해준다.
 인천역 쪽에서 북성동 패루를 지나 50m쯤 올라오다 보면 ‘태림봉’이 눈에 들어온다. 태림봉은 실내를 꾸미는데 많은 신경을 쓴 탓으로 고급 정통 차이나 레스토랑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태림봉’은 대만에서 자재를 직수입한 것은 물론 현지 디자이너를 초청해 내부를 꾸몄다. 그래서인지 오랜동안 호텔에서 일해온 요리사가 내오는 요리의 맛도 일품이지만, 분위기가 일단 끝내준다.
 요리로는 매콤한 향신료가 들어간 ‘마라관자’, ‘해산물 패주’, 해산물과 자연송이가 풍부한 ‘전가복’, 해산물에 누릉지를 넣어 만든 ‘삼선누릉지탕’ 등이 특히 사람들이 많이 찾는 메뉴다.
 ‘태림봉’을 지나 10여m쯤 더 가다보면 왼쪽으로 ‘태화원’이란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 태화원은 인천 화교촌에서 3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전통깊은 곳으로 인천의 가장 대표적인 중국음식점 가운데 하나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벽에 걸린 사진이 일단 시선을 끈다. 사진 속엔 유명연예인들이 주방장과 어깨동무를 하고 활짝 웃고 있다. 소문을 듣고 요리를 즐기러 온 연예인들이 음식을 먹은 뒤 기념촬영을 한 것이다.
 이곳은 해산물이 풍부하고 북경식 사천요리로 담백한 맛을 내는 ‘게살 삭스핀’, 손수 콩으로 만든 춘장으로 맛을 낸 향토자장면이 자랑거리다. 이 집의 향토자장면은 인천시로부터 인정받기도 했다. 태화원 대표 손덕준씨는 인근 ‘자금성’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태화원’을 왼쪽으로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풍미’ ‘대창반점’ ‘자금성’ 등 여남은 개의 크고 작은 중국음식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어디를 들어갈까 고민할 필요는 없다. 하나같이 맛이 뛰어나고 정갈하니까.
 한블럭 지나서 ‘인천화교학교’ 앞에는 ‘상원’이 자리하고 있다. ‘상원’은 특히 얼큰한 짬뽕국물이 인기이며 푸추, 빵이 들어간 코스요리도 맛이 좋다.
 단, 짬뽕맛이 어디는 약간 맵다, 자장면 맛이 어디는 약간 달다, 탕수육을 더 바싹 튀겨준다는 등의 미미한 차이는 있겠지만. 특히, 다른 지역 중국음식점에서는 좀처럼 맛보기 어려운 요리들이 많아 서울, 경기 등에서 일부러 맛을 보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인천사람들은 외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장소로 선호하고 있기도 하다. 단체손님들로 늘 북적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와함께 음식점 중간중간에 ‘향만성’ ‘중홍상점’ 등 중국음식 재료와 중국술, 차, 중국토산품을 파는 중국상점도 눈에 띈다.
 중화가 식품점인 ‘향만성’에선 ‘월병’ ‘춘권피’ ‘꽃방’ ‘물만두’ ‘야끼만두’ ‘선해삼’ ‘자연송이’ 등의 신선한 재료를 판다. ‘중국 포도주’, ‘팔각’ ‘마각’ ‘잠비차’ 등도 주요한 판매물품 들이다.
 ‘중홍상점’은 중국 술, 차, 도자기만 전문적으로 판매한다. 술값은 최하 800원에서 15만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중국의 국주인 ‘오량액’과 ‘빼갈’, ‘이과두주’는 물론 모택동이 즐겨 먹었다는 ‘모태주’도 만날 수 있다. 이와함께 ‘칠보장식품’ ‘정관장’ ‘홍삼’ ‘중국토산품’도 많이 있다.
 이밖에도 각종 중국제품을 판매하는 몇몇 상점이 들어서 있다. ‘중국인거리’ ‘청관거리’라고 하는 것은 화교가 많이 사는 것은 물론, 이런 상점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요리 본가’의 역사는 19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 개업한 ‘공화춘’(중구 중앙동에 위치)은 일제때 청요리로 이름을 크게 날렸으며, 화교유지들은 일본촌 번화가에 있던 ‘대불호텔’을 사들여 북경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중화루로 이름을 바꿔 개업했다. ‘중화루’는 그때도 서울의 ‘대관원’보다 건물이 멋지고 맛도 뛰어나 서울의 한량들까지 발걸음을 하곤 했다는 말이 전해온다.<김진국기자> freebird@in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