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운기 스페이스 빔 운영위원
 지난 주 인천광역시의 용역 의뢰를 받아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과 해반문화사랑회가 공동으로 진행한 ‘인천광역시 문화예술 중장기종합발전계획’ 공청회가 개최되었다. 그 동안 인천시의 문화예술 관련 정책이나 시행 방식에 대해 불평과 불만이 고조되고 각종의 의견들이 난무하던 상황 속에서 1년여의 기간 동안 대한민국과 인천의 대표적인 문화예술 관련기관 및 단체가 연구를 맡았고 여기에 내노라하는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나름의 철학을 토대로 장기적인 전망 하에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할 것이라는 점에서 기대가 컸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곳곳에서 보이는 고심의 흔적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실망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은 무엇을 위한, 누구의 문화예술인지가 분명하게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너무나 분명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면 이번 발전계획안은 기존의 ‘장르화된 예술’을 토대로 ‘제도화된 공간’ 속에서 ‘소수 전문가’들이 주체가 되어 인천의 대내외적 ‘이미지 개선’을 통한 ‘경제적 수익’ 산출에 궁극적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기에 충분하였다. 사실 문화적 정체(停滯)의 주된 요인이 바로 이러한 접근 태도에서 비롯됨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반성적 검토는 발견할 수 없으며 나아가 최근의 변모된 문화 지형의 양상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그 동안 이렇다 할 문제의식 없이 막연하게 사용한 점이 없지 않은 ‘문화예술’의 개념과 범주, 행위 주체에 대한 보다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것 같다. 그렇지 않고 단순히 외연의 확장에만 치중할 경우 발전은 커녕 기존의 문제를 그대로 확대 재생산하며 또 다른 골칫거리만을 양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문화예술 행위의 실질적 주체가 되는 수많은 ‘나’들로부터 출발점을 삼아 보다 효과적인 개입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개별 주체가 살아가며 세계 및 또 다른 타자와 맺게 되는 특정의 방식이나 유형을 ‘문화’라 칭하고 ‘예술’은 이러한 자기 삶에 대한 성찰적 행위 일반을 지칭한다면 ‘문화’의 범주에는 기존의 음악, 미술, 연극, 무용 등등만이 아닌 우리들 삶의 형태 모두가 포함되며, ‘예술’ 또한 그 행위의 주체가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모두가 주체이자 객체인 것이다. 따라서 ‘문화예술’의 발전이라 함은 수많은 ‘나’들이 각자의 지점과 맥락에서 원활하고도 생산적인 소통구조와 연관을 만들어 가는 것을 말하며, 문화예술 발전계획은 바로 여기에 대한 ‘매개’ 내지는 ‘간섭’의 전략으로서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만약 이러한 관점에서 인천의 ‘문화예술‘을 파악한다면 정형화되고 공식화된 입장에서 본 것과는 판이한 결과가 드러날 수도 있다. 특히 그 동안 비문화 영역으로 취급되어 온 부분에서 또 다른 예술적 성격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며, 역으로 제도화된 문화영역 속에서의 비예술적 속성들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대안도 마찬가지로 가시적인 행사 내지는 공간 위주의 보여주기식, 채워넣기식 방안을 통해 ’오늘‘과 ’나‘들을 사상(死傷)시키는 무리수는 피할 수 있으리라 본다. 더불어 “인천을 대표할 만한 축제가 없다”며 자발적 참여 주체를 수단화하는 이중 소외의 가능성도 없을 것이다. 또한 경제자유구역 내의 외국인 투자자들을 위한 ‘기쁨조’ 역할을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누구나 ‘문화’를 이야기하고 ‘예술’을 사랑한다지만 저마다 생각하는 개념과 형태는 제각각이다. 이는 문화예술 전문단체 내지는 전문가라고 하여 예외는 아니다. 필자가 보기에 이번의 발전계획안 또한 마찬가지로 다양한 시각 중의 하나로 보인다. 이번 공청회를 통해서 ‘문화예술’에 대한 자기 정의 및 논의를 우리들 삶의 밑바닥으로부터 길어 올리려는 노력을 더욱 활발히 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이른 바 ‘문화계몽주의’ 시대는 지났고 섣부른 ‘문화산업화’는 일차적인 경계대상이다.